좋은 말씀/- 교리강좌(1)

3장 성경의 권위

새벽지기1 2016. 4. 24. 09:34


3장 성경의 권위

 

우리가 성경의 증거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우리는 성경을 권위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계시에 관한 권위 있는 진술은 오직 여기, 성경에만 나타나 있다는 우리 복음주의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이 정당함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왜 우리는 교회나 전통이나 어떤 종류의 ‘내적인 빛’, 혹은 우리 자신의 이성과 이해력이 아닌 성경에 의지하는가? 이것이 우리의 입장이며 우리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이 정당함을 증명해야 하며, 그 방법은 성경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1. 계시와 영감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성경의 권위는 이 하나님의 영감에 기초한다.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계시는 아니지만 성경의 모든 것은 영감을 받은 것이다. 계시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계시가 아닌 것도 많이 있다. 전도서나 죄 많고 불경건한 사람들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 모든 진술이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이 주장하는 바는 성경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이 영감된 기록이며, 따라서 무오하고 틀림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2. 영감의 의미

 

1) 영감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

성경의 특정 부분들만 영감을 받았고 다른 부분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영감을 받은 부분이 있지만 역사서들과 다른 여러 부분들은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성경의 저자들이 열정적인, 또는 창조적인 방식으로 글을 썼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시인은 영감을 받았어”하는 영감이 아니다. 성경 저자에게 주어진 아이디어가 영감을 받았을 뿐이라고도 한다. 그 말도 맞지만 영감은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숨결 혹은 감응이 임한 다음 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창작물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2) 성경의 영감은 축자적 영감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영감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이 메시지들을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 불어넣으셨으며 성경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행하심의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적 숨결로써 만들어졌다고 믿는다. 축자영감이란 그저 생각이나 개념들만 영감된 것이 아니라, 실제 기록이 특정한 단어들에 이르기까지 다 영감 되었다는 것이다. 즉 단순히 내용에서만 옳은 것이 아니라 모든 단어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는 성경 자체가 축자 영감을 주장한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한다.

 

축자 영감의 의미

성경을 기계적으로 받아 썼다는 의미는 아니다. 저자들간에 문체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각 저자들이 특유의 표현법과 습관,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쓰고 있다. 바울이 쓴 글을 베드로나 요한의 글과 금세 구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영감이라는 전체 개념은 개개인의 저자들과 그들의 특성뿐 아니라 그가 조사한 것과 다른 저자들의 자료를 참고한 것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영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저자가 기록하는 가운데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통제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설명하는 예화 중 가장 좋은 것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말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다. 오늘은 이 말을 타고 그 다음날은 같은 길이지만 다른 말을 타고 간다. 그 두 말이 그를 태우고 가는 방식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움직이는 모양-말하자면 문체-은 엄청나게 다르지만, 두 말 모두 동일한 기수에 의해 인도받고 통제받고 있기에 결과는 동일하다.

축자 영감이 의미하는 바는 성령께서 저자들을 심지어는 특정한 단어를 선택하는 일에서조차 이와 같이 지배하고 통제하고 인도하여, 오류를 범하는 것을 막으시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신 결과를 산출해 내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3. 축자 영감의 증거

 

1) 성경은 영감에 대해 명확한 주장을 한다

성경은 ‘거룩한 글들’을 칭한다. 범상한 글들이 아니라 특별한, 거룩한 글이라는 것이다.

성경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묘사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또는 이와 비슷한 표현이 놀랍게도 구약 성경에서만 3,808번 사용되었다.

 

신 18장 18절에 기록된 모세의 그 위대한 예언,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이것은 우리 주님이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일 뿐 아니라 모세 자신과 그의 사역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구약의 예언자들도 그들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시니라 --”(겔1:3, 호1:1, 욘1:1). 그리고 언제 그것이 임했는지를 정확하게 말한다.

 

흥미로운 사실이자 대단히 귀중한 논거는 어떤 선지자들은 그들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고 솔직히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종종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강권을 받았다(렘1:6-7).

또 중요한 사실은 선지자 자신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12:18,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베드로도 같은 말을 한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110-12)

 

사도 바울도 중대한 진술을 한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한 것으로서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한다고 말했다(고전2:13). 고전 2장의 내용 전체가 이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 벧후 3:15-16에도 저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진술이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여기에 주목하라-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다른 성경”이라는 문구를 사용함으로써 바울의 서신들을 구약 성경과 동일시하며 그것들을 같은 기초 위에 놓는다.

 

엡 2장의 중요한 진술이 있다. 그리스인들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20절)라고 말한다. 우리는 신약 정경이 형성된 이후에 씌어진 어떤 것도 권위 있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2) 축자 영감을 지지하는 결정적 구절들

디모데후서 3장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베드로전서 1장20-21절,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예언들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타고난 능력과 성향들과 재능들을 사용하여 사물을 고찰한 후 최선을 다해 기록함으로써 만들어 낸 스스로의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전혀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이 성령의 강풍, 하나님의 바람,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그를 붙잡아 감동시켰으며, 그는 성령에 의해 인도를 받았다. 예언들과 성경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생겨나게 된 것이다.

 

3) 성경이 성경을 대하는 태도

주님은 성경을 폐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반대자들과 마주하여 그들에게 성경을 인용하시면서,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요10:34-36). 성경은 폐기하거나 거역할 수 없고, 부인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바울은 한 글자까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갈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 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였으니 곧 그리스도라.”

축자 영감이라는 문제 전체에 대해서도 이것은 가장 중요한 진술 중 하나이다.

 

신약과 구약을 둘 다 성경이라고 주장한다.

딤전 5: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신 25:4의 말씀과 눅 10:7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을 가리켜 “성경에 일렀으되”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신약은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한다.

행 4:24-25,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그리고는 시편 2편을 인용한다. 그 구절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의 종 다윗의 입을 빌어 이것을 말한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더 흥미롭게 표현한 곳은 히브리서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3:7). 이것은 시편 95편에서 인용한 것이다. 신약을 철저히 살펴서, 구약을 인용한 후 이것을 하나님과 성령의 말씀으로 간주하고 있는 부분 또는 “말씀하시기를”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부분을 관찰해 보라.

 

4) 성경의 일관성

구약에는 한가지 정신, 즉 메시아의 소망이 스며들어 있다. 시대마다 사람들은 달라지지만 메시아적 소망은 하나였다. 신약에도 오직 하나의 위대한 주제가 있으니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이다. 모든 것이 그를 가리켜 보이고 있고 모든 것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다.

 

5) 가장 중대한 증거-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복음서들을 읽어 보고 그분이 끊임없이 구약을 인용하는 방식을 주목하라. 그분은 단지 “기록하였으되”라고만 말씀하셨으며 그것이 최종적인 결론이었다(눅19:46,요6:45). 그분은 분명 구약 전체를 권위 있고, 최종적이며, 최고의 것으로 받아들이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마19:4). 창세기의 첫 부분을 권위 있는 근거로 여기셨음이 분명하다. 성경의 권위와 축자 영감을 하찮게 여긴다면 필연적으로 주님 자신에 대해서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막12:26-27) 구약 전체를 언급하고 계신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10:35). 결국, 영감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근거는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6) 성령의 조명 외에 영감성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기록상의 차이점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몇몇 불일치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가 가진 번역본들에는 분명히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난점들이 존재하며 우리는 이것에 대해 기꺼이, 그리고 솔직하게 언급해야만 한다. 하지만 비평가들이 들고 나오는 소위 난제들과 불일치점들의 대부분은 설명이 가능하다.

사실상 이 문제들의 대부분은 이미 해결되었다. 고고학적 연구의 결과로, 그리고 성경의 언어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설명되었다. 아직도 몇 가지 난점이 남아 있지만 그것들이 결코 교리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들은 숫자의 문제이거나 아니면 아마도 필사자나 번역가의 실수고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이다. 우리는 최초에 기록된 원본 문서는 무오하다는 사실을 확언한다. 성경이 유일무이하게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책임을 증명해 줄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은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만 한다. 이 모든 사실을 완벽하게 진술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인용한다.

 

“우리는 교회의 증언에 감동받고 설득되어 성경을 높고 귀한 것으로 여기게 될 수 있다. 또한 성경이 천국의 내용을 다룬다는 사실, 교리의 능력, 문체의 장엄성, 모든 부분의 일관성,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전체의 시야, 인간의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완전히 나타나 있음, 그 외 비교 대상이 없는 많은 탁월성들, 전체적인 완전성 등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무오한 진리이며 신적인 권위를 갖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완전히 수긍하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말씀으로, 그리고 말씀과 함께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면적 역사의 결과다(Ⅰ: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