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교리강좌(1)

1 장 교리 공부의 목적과 방법

새벽지기1 2016. 4. 21. 08:43

교리강좌 1

로이드 존스, 교리강좌 1- 성경론, 신론, 인간론, 그리스도론

 

1 장  교리 공부의 목적과 방법

 

29:29,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우리는 교리에 대해 별로 많이 들어보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심지어 어리석게도 자기들은 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매우 딱하고도 유감스러운 태도이다.

 

1. 성경 교리란 무엇인가?

 

1) 성경은 일반 세계사가 아니다

2천년의 긴 기간이 창세기에서는 단 열한 장 안에 들어가 있다. 성경은 세계사에 관심이 없다.

성경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2) 성경은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역사도 아니다

성경의 목적과 계획을 드러내는 데 도움 되는 특정한 사실들만 골라서 기록한다.

사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전기가 아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에 대한 몇몇 진리를 제시하는 데 관심이 있다.

,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에서 약 삼 년 만을 다루고 그 외의 것은 아주 적게 다룬다.

탄생도 기록되어 있지만 주로 예수님의 공생애, 즉 나이 삼십이 되신 후에 일어난 일이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0-31)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21:25)  

 

3) 성경은 거대한 구속 이야기다

성경은 사람들이 죄를 지은 결과 하나님이 그들에 대해 하신 일의 역사이며, 성경에 나오는 다른 모든 것은 사실상 이에 부수적으로 수반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에 의한, 그리고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구속의 메시지를 우리가 이해하고 보고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하는 데 관심이 있다.

 

4) 교리의 분류

① 성경론

   성경이 무엇이며, 성경이 성경에 대하여 스스로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다룬다.

② 신론

   성경을 우리의 권위, 우리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면 다른 모든 교리보다 우선해야하는 위대한 교리가

하나님에 대한 교리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1:1). 여기서 하나님을 만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다.

③ 인간론

   성경의 임무는 우리의 구속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며, 구속은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 하시는 일이다.

④ 그리스도론

   우리 주님이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구약의 모든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며, 예수는 그 절정이다.  

⑤ 구원론

   구속이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되는가를 말해주는 교리.

⑥ 교회론

   구원 받은 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된다. 교회에 관한 교리.

⑦ 종말론

 

교리강좌 1

   우리와 교회와 세상의 마지막에 대한 교리. 모든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를 웅대한 절정과 완성으로

이끌고 있다. 몇 가지 결정적인 일들, 마지막에 될 일들이 아직 남아 있다.  

 

우리는 성경 본문에서 교리들을 찾아볼 것이며, 우리의 임무는 그 교리들을 뽑아내어 연구하는 것이다.  

 

2. 어떻게 성경 교리를 공부할 것인가?

 

1) 교리 공부는 신학 공부와 다르다

신학을 다루지  않으면서 어떻게 성경 교리를 연구할 수 있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리 공부는 반드시 성경이 말하는 것, 그리고 성경만이 말하는 것에 국한시켜야 한다.

신학은 더 넓은 분야를 다룬다. 신학에서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자신을 계시하셨을 뿐 아니라 역사에도

계시하셨다는 말로 시작한다. 신학은 당연히 성경을 포함하지만 그 이상의 것도 포함한다.

신학은 인간의 생각과 철학도 도입한다. 이 모든 것을 한데 결합해서 성찰한 결과의 마지막 산물이 바로 신학이다.

신학과 관련해서 한 가지 위험은, 철학과 사색, 그리고 당신 자신의 생각과 인간의 이성을 도입하는 순간 때로 위험할 수도 있는 어떤 일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피할 것이다.  성경에서는 신학에서 다루는 신의 존재 논증을 다루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실존에 대한 증거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포한다.

 

 2) 교리 공부는 변증학과 다르다

교리를 변증하는 것이 변증학이다. 창조의 교리를 다룰 때 진화론의 문제들이 제기되겠지만 그것을 철저하게 다루지 않을 것이다. 성경 교리는 진화론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성경 자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해설할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는 은밀한 일들이 아닌 계시된 일들에만 우리 자신을 국한시켜야 한다. 죄의 교리를 다룰 때,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해서는 답해 줄 수 없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지 않다. 우리의 입장은 신명기 2929절의 입장이다.

“감추어진 일(궁극적인 설명)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3. 왜 우리는 성경 교리를 공부해야 하는가?

 

1) 성경이 교리를 말하고 있다

성경 자체가 교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관심은 특정한 진리들을 우리에게 분명히 제시하는 것인데, 그 진리들이란 교리이다. 성경을 올바르게 읽는다는 말은 교리에 대해 숙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우리 자신이 그 교리를 이해하기 원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교리를 설교했다. “너희 백성아! 너희는 율법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율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율법이 너희에게 보여주고 있는 이 사실을 이해하고 깨달아야만 한다.

 

주님이 교리를 설교했다. 주님은 율법을 취하사 그것을 교리의 형태로 해설하셨다. 주님은 원리들을 뽑아내서는 그것을 적용하고 시행하셨다.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5:27-28). 주님이 산상설교에서 정말로 하신 일이 바로 이 일이었다.

 

사도들이 교리를 설교했다. 사도행전을 읽고 초대 그리스도인 설교자들의 설교를 관찰해 보라. 본문 원어를 분석하지 않았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들이 설교하는 방식은 교리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메시지가 있었고, 그것을 백성에게 제시했다. 그들은 이것이 교리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성경을 사용했다. 그것이 설교의 의미이고 목적이고 기능이다. 설교는 단순히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기회가 아니다. 설교의 목적은 진리를 회중에게 전해 주는 것이다. 사도들은 설교의 본질적인 역할, 그것을 행했다.

 

신약서신서 기자들이 교리를 말했다. 서신서 저자들은 교리를 취해 그것을 실제적인 방식으로 적용했다. 그들은 언제나 교리를 표현하고 설명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성경이 그것을 요구한다.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면한다.

 

 

교리강좌 1

2) 교리를 공부하지 않고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위험하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 말한다! 주님 당시 유대인들의 진짜 문제는 그들이 문자에만 얽매여서 그 정신은 결코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리를 결코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말(word)을 안다는 데 만족하여 말씀(Word)은 결코 깨닫지 못했다. 우리 모두도 이런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문자에만 얽매인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자에 얽매이는 것은 우리 영혼을 저주 받게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성경을 공부하고 나서도 교리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연구가 전혀 유익이 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3) 교회는 수십 세기 동안 필수적으로 성경 교리를 강조했다

교회의 초창기부터 예수가 주라는 고백(교리적 진술)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교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례 형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을 때, 지망생들은 교리 문답을 배웠다.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했다. 교회 내에 이단과 이교들이 발흥함에 따라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 등을 만들게 되었다. 교리들에 대한 정의가 신경이다.

 

교회가 죽어있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새 생명, 새로운 활력, 새로운 이해가 생겼다. 교회는 교리를 정리하는 것과 그것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진술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7세기 웨스트민스터에서 작성되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라고 불리우는 위대한 신앙고백이 있다.  이것은 전 세계 모든 곳의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이다. 신앙고백들과 그에 수반되는 교리 문답들은 교회 안의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게 하고, 그 믿음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도록 하기 위해 성경 교리를 진술한 것일 뿐이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를 믿음 안에서 든든히 세우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교회의 초기 시절과 종교개혁 시절과 17세기에 이것이 필요했다면, 분명 그것은 지금 현재 이 순간에도 긴급하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오늘날 교회는 사이비 이단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들도 “성경을 가지고” 말한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만, 그들에게 제대로 대답을 하지는 못한다. 성경 교리를 연구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가 그런 가르침들에서 잘못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심각한 혼란이 있다. 교리가 존재하지 않고, 분명한 정의가 없으며, 누구든 자기 좋은 대로 말한다. 이는 성경 교리 공부의 긴급한 필요성을 말해준다. 우리의 영혼을 멸망시키기 위해 오는 ‘광명의 천사’ 의 계략을 모두 알아야 한다.

 

4) 성경 교리 공부의 목표는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위대하고도 강력한, 교리의 최고봉들을 뽑아내어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하자.

 

성경에 대한 고찰은 언제나 예배이며, 성경과 그 가르침에 대하여 다른 교과서들에 대해 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그들은 이 위대한 교리를 마치 인간의 사상과 아이디어인 것처럼 접근한다. 그들은 언제나 예배와 경외하는 마음으로 교리를 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교리를 알기를 소망해야 하지만, 그 이유가 배운 후 지식으로 교만해지거나 지적 흥분을 느끼려는 것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더 온전한 방식으로 바라보게 됨으로 인해 하나님께 예배와 찬양과 경배로 더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이로 인해 모든 교회가 소생하고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다시 한 번 목도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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