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교리강좌(1)

4장 우리는 교리를 어떻 발견하는가

새벽지기1 2016. 4. 25. 15:26


4장 우리는 교리를 어떻 발견하는가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교리 자체로서의 교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인도하는 교리에만 관심이 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소요리문답)

 

1. 왜 이 주제를 살펴보아야 하는가


성경은 진술된 교리의 모음이 아니다.

“나는 교리에는 관심이 없다”하는 사람은 매우 어리석고 실로 우스꽝스러운 사람이다.

성경을 접한 사람은 그것을 읽은 결과 뭔가를 믿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믿어야만 하는 바를 믿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들도 “우리 가르침은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초대교회 시절에도 이단들이 있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2:19).

그들은 다양한 모습의 오류와 이단성을 보이고 있었다.

오늘날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들이 무엇을 믿으며 왜 그것을 믿는지 알아야 할 의무가 현재와 같이 심각하게 요구된 적은 없었다.

 

2. 이성과 지성의 역할

 

1) 우리의 최종적 권위는 성경이다

계시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성경이 우리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권위라는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존 웨슬리의 표현처럼 “한 책”의 사람이 되기로 결심해야 한다.

여기에 나의 유일한 근원, 나의 유일한 권위가 있다.

 

2) 우리는 성경에 완전하게 복종해야 한다

① 성경의 교리는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다. 이성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지적 자살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파스칼은 이성의 최고의 업적은 이성에는 끝과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다.

 

② 이해되지 않는 진리도 받아들여야 한다. 믿음이란 오직 성경에 있는 내용만으로 만족하기로 매우 신중하게 결심하고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이 기록하지 않은 것은 몰라도 만족한다.

 

③ 철학과 계시를 섞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것에 대해 무언가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철학자이다.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 교리를 믿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교리를 거부해서도 안 된다. 성경이 분명히 가르치는 진리라면 이해하든 못하든 받아들여야 한다.

 

3) 자신의 논리와 체계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철학자이다. 그래서 완전한 체계를 원하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기를 원하고, 모든 것을 진술할 수 있기를 원한다. 자신의 논리나 체계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성경의 가르침을 넘어서 버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성경의 모든 진술을 존중해야 한다. 우리의 체계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 성경의 한 구절이라도 축소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예 강경 칼빈주의자의 잘못- 성경으로 증명할 수 없는 사실들을 주장).

 

4) 이성과 지성의 역할에 대한 일반적 규칙

성경의 권위에 우리 자신을 복종시켜야 할 뿐 아니라, 성령의 인도와 영감, 조명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다른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성경을 읽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반드시 나의 무능함을 자각한 채로 성경에 접근해야 한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성령이 나를 깨우치시고 조명해 주셔서 오류와 미묘한 위험들을 피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도록 해야 한다.

 

3. 교리에 도달하는 방법

특정한 주제를 언급하는 모든 성경 구절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들을 서로 대조해 본 후 그 기저에 놓여 있는 교리를 발견하려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 모든 구절에서 공통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이 교리이다.

 

1) 교리를 발견해 나갈 때 지켜야 할 일반적 규칙

① 교리는 성경에 명확하게 기술된 것이어야 한다. 성경으로 그 교리를 증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성경으로 확증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무 가치도 없다. 그 가르침을 거부해야 한다.

 

② 교리는 오로지 성경으로부터 온 것이어야 한다. 교리의 근원은 순수하고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성경이어야 한다. 뒷문을 통해 슬금슬금 들어오는 철학을 경계해야 한다. 부분적으로는 성경적이고 나머지는 다른 무엇인가로부터 온 교리 역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심리학, 마케팅, 뉴에이지와 휴메니즘)

 

③ 교리는 명료해야 한다. 참된 교리는 언제나 평이하고 명백해야 한다. 성경이 어떤 사람들을 향해 씌어진 것인지를 알라. 그들이 당연히 자기의 글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했다. 해설해줄 박식한 교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 서신들이 노예들과 평민들, 보통사람들에게 쓴 것이다. 언제나 헬라어나 히브리어 단어의 뜻에 의지해서 자신들의 교리를 전개해 사람들은 용납할 수 없다.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요일2:27). 보통 사람들은 성경읽기에 적합하지 않고 오직 카톨릭 교회만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로마카톨릭의 주장을 거부한다. 우리에게 이해하기 쉽고 정확한 번역본이 주어진 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철학이나 언어학적 이해, 혹은 다른 언어에 대한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도 완전히 거부한다. 또한 지난 일백 년 간의 신학중 많은 부분을 거부한다. (신정통주의신학과 자유주의신학의 위험성)

 

2) 실제적인 지침

연역법; 성경구절들로부터 의미를 쉽게 끌어내는 방법.

귀납법; 특정한 구절들로부터 교리를 세워 나가는 방법(예, 삼위일체교리는 성경에 진술된 곳은 없다.)

 

단 한 구절만으로 교리를 이끌어 내면 안 된다. 한 구절의 절반에만 의존하여 교리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

다른 성경과 모순을 일으키는 결론을 끌어내면 안 된다. 언제나 성경과 성경을 비교해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 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딤후2:15). 성경은 하나의 위대한 메시지이다. 성경은 언제나 완벽한 전체를 형성하기 때문에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모순을 일으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교회사의 큰 인물들이 이 간단한 규칙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주요한 이단이 되어 버린 일이 얼마나 많았는가?

 

4. 교리에 대한 의견의 차이

 

1) 의견차가 발생하는 이유

① 잘못된 방법으로 이끌어낸 교리(위의 규칙을 지키지 않음)

 

② 기존의 이론에 교리를 끼워 맞추는 경우

카톨릭은 교회와 그 질서가 이미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고는 모든 것을 그 체계 안에 강제로 맞추어 넣는다. 자유의지에 특정한 이론을 가지고 출발하면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선입견이나 편견, 철학적 이론들을 개입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③ 확실치 않은 사실에 대한 독단적 주장

성경으로 입증할 수 없는 이론을 만들어 낼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특히 예언의 주제를 다룰 때.

 

④ 지나친 문자적 해석

명백히 상징적인 의도로 씌어진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길 고집한다. 성찬의 떡과 잔은 상징이다.

요한계시록도 모든 것이 상징적 의미인데 문자적으로 취급하다가 많은 심각한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

 

⑤ 분파주의와 편견

분명히 피해야 할 것은 분파주의다. 단지 우리가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들어왔고, 또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편견을 가진 채 출발하거나,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편견을 변호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교파주의의 가장 끔찍한 재앙이다.

 

2) 성경에는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성경에는 그 경건성이나 능력이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일치할 수도 없는 그런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럴 때는 분명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지금 이 순간에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고전13:12)하게 부분적으로 알고 이해한다. 우리의 지식은 완전하지 않다. 주어진 계시로 만족하자.

 

3) 반드시 알아야 하는 최종적이며 절대적인 교리도 존재한다

그것은 구원의 길에 필수적인 교리들이다.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서,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문자적, 육체적인 부활에 대해서는 어떤 이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떤 논쟁도 있을 수 없다. 이 교리는 최종적이며 또한 절대적이다.

 

하지만 최종적이거나 절대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다른 모든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상대의 말을 들어주자. 관용하도록 하자. 우리에게 이러한 문제를 입증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고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위대한 구원을 함께 누리며, 장차 감추어진 일들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주님이 우리를 아시듯 우리가 알게 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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