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프란시스 쉐퍼의 신학적 뿌리[6] - 사회관 / 신동식목사

새벽지기1 2016. 3. 16. 10:32

4]사회관

프란시스 쉐퍼의 신학적 뿌리를 이해하는 네 번째 관점은 그의 사회관에서 볼 수 있다. 특별히 그의 국가와 법에 대한 이해는 그의 신학적 틀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쉐퍼는 국가와 법에 대한 이해를 청교도들의 사상에서 가져 왔다. 그는 낙스와 루더포드 그리고 이들의 영향아래 18세기의 부흥을 일으켰던 청교도들의 모습을 통하여 그의 사상을 정립하였음을 볼 수 있다. 쉐퍼는 기독교인과 국가와의 궁극적인 관계에 대하여 분명하였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국가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복종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국가에 권위를 주셨다면 그 국가는 자율적입니까? 정말 인간이 모든 것들의 척도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삶의 다른 모든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하나님의 법 아래 있습니다."

이것은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의 외침과 동일한 것입니다. 낙스는 『스코틀랜드 귀족들과 의회에 보내는 상소』에서 종교문제를 다루고나서 세속권력, 특히 왕권에 대한 저항의 문제를 다루었다. 왕이 전제[독재]를 할 때 신하들은 "엄한 권고와 충고"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저촉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교정하고 억제해야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왕들이 선하든 악하든 우리는 그들에게 순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명하셨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은 낙스에게는 신성모독적인 발언으로 들렸던 것이다. 


존 낙스의 사상은 청교도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특별히 낙스의 영향을 받은 1600년대의 인물인 사무엘 루더포드는 역사적인 책을 저술하였다. 그 책은 바로 『왕과법(Lex Rex)』이었다. 쉐퍼는 이 책을 기반으로 시민불복종운동의 원천으로 제시한다. 루터포드목사는 1644년경에 그의 유명한 책인 Lex Rex를 썼다. 이 책은 왕과 백성들 사이의 투쟁을 자아냈다. 당시 가장 뜨거운 문제인 왕과 법문제를 다루었다. 왕은 법위에 군림한다는 사상을 정면으로 대치한 내용이었다. 이 책은 언약도들의 정치원리와 정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힌 책이었다. 왕권은 백성들에 의해서만 수여되는 것이요 백성들이 원치 않을 때에는 왕의 권좌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왕은 국가의 가장 높은 종이며 언제나 섬기는 종임을 잊어서는 않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절대 권력이란 불합리하고 이치를 거스리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군주의 의지가 절대로 옳고 그름의 규범이 되어서는 안되며, 나라는 오직 법에 의하여 통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왕권 신수설과 절대군주론을 굳게 붙든 왕으로서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지 않을수 없었고, 배포된 책은 모두 다 수거하여 불에 태워졌다. 이같은 발언은 존 로크가 민주주의 정신을 이야기 하기 50년전에 한 종로교 목사에 의해서 가르쳐졌으며 존 낙스이후로 스코틀란드 국민 정서이기도 하였다.이와 같이 쉐퍼의 사회사상은 스코트랜들의 청교도사상에 연속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긴 여행을 통해서 쉐퍼의 신학적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쉐퍼의 사상은 한쪽면으로 치우치는 면이 있었다. 일부는 프란시스 쉐퍼의 사상은 칼빈과 베자를 걸쳐 화란 개혁주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다른 일부는 칼빈과 낙스 그리고 청교도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이어 졌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프란시스 쉐퍼의 사상은 어는 쪽에 치우쳐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두 부류의 개혁주의 사상을 모두 섭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별히 그의 사상은 전통적 개혁주의 사상에 서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쉐퍼의 개혁주의 사상의 형성에는 이미 살펴 본대로 교회사적 멘토들이 있었다. 존 칼빈, 존 낙스, 사무엘 러더포드, 그레샴 메이첸 , 반틸 그리고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도예벨트 ,한스 로크마커 이들 모두는 쉐퍼의 신학적 사고의 긴 여행에 영적 멘토요 동역자들이었다. 이들은 곧 쉐퍼였으며 쉐퍼는 이들의 영적 작업을 토대로 20세기의 인본주의 세계에 폭탄을 던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