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프란시스 쉐퍼의 신학적 뿌리 [4]- 교회관/신동식목사

새벽지기1 2016. 3. 14. 07:45

2] 교회관

프란시스 쉐퍼의 이러한 성경에 대한 분명한 입장은 그의 교회관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 북장로교의 분열을 통하여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 지를 분명히 하였던 쉐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하여 더욱 확고히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는 교리의 순결성과 교회의 공동체의 실재성을 자발적으로 알려 지게 하는 교회여야 한다."

쉐퍼는 교회의 가시적인 순결성을 지키기 위하여 인간적인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하지만 계속 자유주의를 주장한다면 교회내의 자유주의자들은 마땅히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참으로 진리를 말하고자 한다면 반정립의 기초위에서 내용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이러기 위해서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서 떠나는 사람에 대해 징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성을 실제로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반드시 보여주어야 할 것은 우리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일이다. 쉐퍼는 이러한 기준에 서서 매우 중요한 선택을 요구한다.

"교회가 더 이상 징계를 활용하지 않은 지경에 이를때에 그 다음에 우리로서는 주님앞에 눈물을 흘리며 제2의 단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교리적 순결을 위한 투쟁이 패하면 ....진실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이 관계해오던 저 가시적 기구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사상이 쉐퍼를 급진주의자로 몰아가고 근본주의자라는 닉네임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쉐퍼는 이러한 결단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눈물"을 흘리며 떠나 가는 것이다. 쉐퍼에게는 가시적 교회의 순결성의 실천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는 적극적인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 일을 위하여 다가오는 희생도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가 없다"

이것은 기구로서의 교회가 일차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일차적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교회의 왕과 주로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그런 교회에 충성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쉐퍼가 철저하게 성경의 입장에서 가지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다.
뿐만아니라 쉐퍼는 교회를 불가견적인 교회(마16:18,히12:22-23)와 가견적 교회(마18:17)가 함께 존속함을 분명히 함으로 개혁자들의 교회관을 따르고 있다. 특별히 가견적 교회로서의 지역 교회를 말하기를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존속할 신약시대의 기구"라고 하였다. 그는 교회란 사람들이 함께 알하는 곳으로서 성령에 의하여 어떤 형태로 함께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라고 정의하였다. 이것은 칼빈이 교회는 사람이 세우신 건물이나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라 한 정의와 맥을 같이한다.

쉐퍼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이 오실때까지 유지해 나가야 할 지역 교회의 표준을 여덟 개로 보았다.

"첫째는 성경적 표준은 교회는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둘째, 초대교회의 교회의 모습을 통하여 볼 때 회중은 특별한 방법으로 매주 첫째 날에 모였다.(고전16:2, 행20:7)

셋째, 지역교회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직원들(장로들)이 있다(행20:17-34, 딤전5:17, 행6:1-6)

넷째 교회의 공동체들의 물질 부문의 책임을 맡을 집사들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교회는 징계를 신중하게 시행해야 한다.(고전5:1-5)

여섯째, 장로와 집사들의 대한 특별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딤전3:1-13, 딛1:5-9)

일곱째, 개교회보다 더 넓은 범위의 조직을 할 근거가 있다.

여덟째, 성경적 표준으로 세례와 성찬의 두 성례 시행이 있어야 한다."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볼 수 있듯이 프란시스 쉐퍼는 그 누구보다도 종교 개혁의 역사적 기독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핫지 부자, B.B.워필드 그리고 J.G 메이첸의 신학에 함께 하고 있다. 그의 교회관 역시 이러한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