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프란시스 쉐퍼 사상의 신학적 뿌리 [1]-서론/신동식목사

새벽지기1 2016. 3. 10. 10:49

프란시스 쉐퍼 사상의 신학적 뿌리  

Ⅰ. 프란시스 쉐퍼의 서론적 고찰

2000년대를 시작하면서 20세기의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렀던 사상가요 전도자였던 프란시스 쉐퍼의 사상을 정리하고 그의 기여와 한계를 논의 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프란시스 쉐퍼는 인본주의 사상과 혼합주의의 도전에 침묵을 지키고 있던 20세기의 교회를 깨웠으며 영적 방황에 휩싸여 헤매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기준을 세워주면 일상의 삶속에서 참된 진리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인도하였던 20세기의 선지자였다. 제임스 페커의 말대로 쉐퍼는 다른 이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행한 20세기의 독창적인 인물이다. 이러한 쉐퍼를 향하여 패커는 조금도 서스럼없이 평가한다.

"쉐퍼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영원한 복음을 20세기 현대인들에게 전파하려고 노심조차했던 하나님의 민감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민감한 사람이었던 쉐퍼는 개혁주의 전통에 서있는 장로교 목사였다. 그가 개혁주의 장로교 목사라는 사실은 매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개혁주의는 20세기 후반을 매우 힘없이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의 현상은 매우 침울하였다. 젊은이들은 소망을 잃은채 허무주의 속에 빠져 있었으며 섹스와 마약이 대학가를 휩쓸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교회를 찾아오지 않았다. 더 이상 교회는 이들에게 삶의 좌표를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은 한사람을 세웠고. 그를 통하여 시대의 아픔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참다운 삶의 좌표를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바로 프란시스 쉐퍼였고 그의 외침은 교파를 초월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가 만들은 스위스의 "라브리"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안식처의 역할을 하였다. 지적으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라브리"는 참다운 영적 오두막이었다. 쉐퍼는 개혁주의 사상에 바로 서서 복음주의에 속한 이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것에도 분명한 입장을 취하였다. 

이러한 쉐퍼의 사상은 단순하게 서구에만 미치는 것은 아니었다. 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 1980년 후반 혼란 시기였던 한국 사회에 그의 사상의 접목은 한국 교회와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엄청난 변화의 현실 가운데 쉐퍼의 책과 그의 사상은 기독 청년들의 사고속에 자리 잡히기 시작하였다. 이제 쉐퍼를 이해하는 것은 이 시대를 이해하는 필수코스가 되었다. 특별히 문화와 시민 불복종운동에 대하여 소경과 같이 가리워졌던 한국교회에 쉐퍼의 영향은 어두운 눈을 뜨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특별히 기독 젊은이들의 사상의 전환에 쉐퍼가 차지하고 있는 영향은 참으로 지대한 것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영향을 준 쉐퍼는 한번도 우리 나라에 온 적은 없다. 그 이유는 우리 나라에 세계관 운동과 동시에 문화에 대한 관심이 성숙되기 이전인 1984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마 좀더 살았더라면 한국에서도 쉐퍼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의 육성은 들을 수 없었으나 그의 책들은 한국의 젊은이들을 만났고 닫혔던 지성의 눈을 뜨게 하였다. 그리고 무너져가는 터를 세우기 위한 운동들이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문화 운동에 있어서 쉐퍼의 영향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다. 밀려오는 문화의 현상 가운데 기독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세속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다양한 혼돈가운데 쉐퍼는 정직한 질문을 통하여 정직한 답변을 주었다. 아무도 그러한 답을 주지 못했던 시기에 쉐퍼는 답변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쉐퍼의 책들은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해소가 자칫 오해를 가져 왔다. 많은 교회에서 쉐퍼의 사상을 가지고 소그룹을 인도할 때 매우 이상한 눈으로 보거나 문제있는 집단으로 본것이다. 그것은 쉐퍼가 가지고 있는 아주 레디칼[Redical]한 모습 때문이었다. 더구나 문화에 대하여 적대적 입장에 서있었던 기존 교회들은 이러한 쉐퍼의 사상을 접목하는데 매우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쪽에서는 근본주의자다. 한쪽에서는 급진주의자다 하는 소리가 난무하였다. 이것은 쉐퍼의 신학적 배경을 이해하지도 않은 체 그의 사상만 조옮김하다보니 다양한 곳에서 삐그덧 거리는 소리가 들리게 된 이유이다. 

특별히 한국 교회는 사상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의 신학적 배경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마 한국적인 독특한 모습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쉐퍼의 신학적 배경을 아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이미 밝혔듯이 그는 개혁주의 장로교 목사이다. 이 사실이 좀더 분명하게 밝혀졌다면 쉐퍼의 교회적 접근은 좀더 쉬웠으리라 생각한다. 이 논문은 바로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연구한 것이다. 그의 신학적 배경을 이해하므로 쉐퍼 사상이 오해 없이 교회에 접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위하여 우선 쉐퍼의 사상적 흐름을 연대기적으로 간략하게 살펴 볼 것이고, 그의 신학적 사상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신학적 배경을 성경관, 교회관, 문화관, 사회관으로 살펴봄으로서 쉐퍼의 신학적 뿌리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러한 이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