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프란시스 쉐퍼의 영성/ 주도홍(기독신대원)

새벽지기1 2016. 3. 9. 12:55

 영성

1) 정의

먼저 쉐퍼에게 있어서 영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의해 볼 것이다. 전인적이며 우주적 영성을 쉐퍼는 제시한다. 우리의 하나님이 만유의 주시며, 만 왕의 왕이시라면 그의 주되심이 모든 삶의 영역에서 밝히 들어 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쉐퍼의 영성의 특징은 두드러진다. 신학적으로 볼 때 쉐퍼의 영성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영성으로서 곧 성화론이라 하겠다.

"참된 영성은 실재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성경은 절대적으로 죄악 된 것들 - 하나님의 성품에 일치하지 않는 것들 - 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과는 별개의 문제로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삶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참된 영성은 삶의 모든 부분을 포괄할 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모든 부분을 동등하게 포괄한다. 이런 의미에서 실재와 관련하여 영적이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기독교선언, 17)

그러니까 우주적 영성을 쉐퍼는 강조한다. 골방의 영성이 아니라, 우주적 영성이요,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자신의 모든 피조물을 향한 영성이다. 영성의 폭이 삶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결코 부분적이지 않다(not fragmented).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성경의 우주관의 통일성과 관련되어 있다."(기독교 영성관, 282)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에는 전 인격이 포함된다. 하나님과 사귀며 산다는 것에는 전 생활이 포함된다. 그러나 현세에서 이러한 일들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결단을 한다는 것에는 실생활이 포함되고 영원 전체가 포함되는 것이다."(라브리, 187)
"하나님은 전인을 만드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것도 전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그리스도의 주권은 전인에 미친다. 그것은 이른바 인간의 영적인 것들, 지성적인 것들, 창의적이고 문화적인 것들을 포함한다. 그것은 법률, 사회학, 심리학을 포함한다. 그것은 인간과 그의 존재의 모든 부면을 포함한다."(기독교 영성관, 439)

그렇다고 참된 영성은 쉐퍼에게 있어서 성도의 보여지는 외적인 삶만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내적인 삶이 전제될 때에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참된 영성은 결코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다. ... 모든 것의 목표는 우리가 내적인 어떤 상태에 이르는 것이며 외적인 상태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기독교 영성관, 225) 이 점에 있어서 쉐퍼는 세 가지 결론에 이른다.

첫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하나님과 친교의 실재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내적 자아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 둘째, "인간의 진정한 싸움은 외적인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세게 안에 있다는 것", 셋째, "참된 영성은 언제나 내부, 우리의 사고 세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기독교 영성관, 342-344)

그러니까 참된 영성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바로 형성되어질 때에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칭의라는 순간적인 관계와 동시에 순간 순간의 모든 성화의 포괄적 관계가 하나님과 바로 유지되어질 때만이 참된 영성은 가능하다. 전인(the whole man)과 전 문화(the whole culture)를 포함시키는 영성이야말로 성경적이다는 것이다.

"구약에서 '모든 삶과 문화'는 먼저 하나님, 다음으로 서로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를 토대로 하였다. 그것은 단지 종교적인 생활이 아니라 문화 전반이었다. 그것은 총체적인 문화 관계였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더 이상 하나의 나라로 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화와 삶의 방식 전체가 사랑과 교제의 결정적인 다양성에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삶에 있어서 '영적인 것'과 그 밖의 다른 것들 간에 플라톤적인 이분법이 있어서는 안 된다."(기독교 영성관, 400)

2) 오해된 영성

쉐퍼에게 있어서 진정한 영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오해되고 있는 영성에 대한 언급이 우선되어야 한다. 오해되어지고 있는 영성이란 신앙훈련 수준의 영성, 율법주의적 영성, 반지성주의, 탈세상주의적 영성 등이 지적되고 있다. 게다가 쉐퍼는 이원론적 영성을 경계한다. 곧 영혼은 중시 여기나, 물질적인 삶은 전혀 관계가 없는 듯한 영성에 대한 오해를 지적한다.
오해된 영성에 대한 쉐퍼의 분명한 지적은 당시 자신의 교회적 배경, 곧 신학교 교육에 대한 분석에서 비롯되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쉐퍼의 비판적 지적은 미국 보수 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는 한국 장로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복음주의는 너무나 자주 플라톤적이며 지나친 영성주의적 기독교의 징후를 보여왔다.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이해하는 영성이란 흔히 삶의 전 영역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신앙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 영성은 종종 아주 좁은 영역으로 한정되었다. 또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포함한 많은 복음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였던 것은 그들 자신의 계획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복음주의가 전적으로 그랬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때까지 매우 자주 나타났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질문을 제기한다. 왜 우리는 길에서부터 그토록 멀리 탈선할 때까지 스스로를 방치해 두었던가? 틀림없이 이 질문 자체가 하나의 대답이기도 할 것이다."(기독교선언, 58)

특히 사랑이 없는 죽은 정통에 대한 쉐퍼의 지적은 예리하며, 더욱 강도가 더해진다.
"이 점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정통 개 교회들이 사랑과 교제의 흔적을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죽어 있는지 모른다. 정통이라고 하지만 죽어서 추한 모습뿐이다! 개 교회 차원에서 아무런 실재도 찾아 볼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부인하는 정도가 극에 이른 것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부인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 교회에서는 교인이라거나 출석자라거나 기부자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사람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갖는 정신 자세가 있어야 한다. 이들은 사람들이고, 이것은 우리가 인격적인 우주를 믿는다고 하는 말과 결부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인격적인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기독교 영성관, 400)

이의 - 쉐퍼의 오해:

게다가 쉐퍼는 경건주의의 영적이며, 물질적인 것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요소가 플라톤적 영성 이해로 현대 기독교인들을 잘못 이끌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은 기독교의 지적인 부분이 무시되기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길지 않게 언급한다. 그러나 과연 그가 역사적 경건주의를 바로 이해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어느 시대든지 기독교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방적인 경건주의를 향한 오해에 의한 쉐퍼식의 발언은 수정을 요한다 하겠다. 무엇보다도 역사적 경건주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안될 것이다. 경건주의야말로 진정한 종교 개혁적 사상, 곧 바른 교리에 근거해서 바른 삶을 강조했던 균형과 조화를 강조했던 운동이었다. 어쩌면 쉐퍼가 그토록 강조하고 구현하고자 했던 바로 그 전인적 경건과 영성을 추구했던 운동이었다. 경건주의에서 복음적 사회활동이 출발되었다는 사실은 이제는 상식에 속한다 하겠다. 특히 프랑케가 이끌었던 할레 경건주의는 이 점에 있어서 분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리를 한다면, 부분적으로는 이원론적인 삶의 모습을 지적하는 쉐퍼의 입장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경건주의에서 왔다는 언급에는 숙고가 요한다 하겠다.

3) 두 가지 요소

쉐퍼에게 있어서 영성은 편이적으로 내지는 교육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신앙 영성과 생활의 영성을 말한다. 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교리의 영성으로 이해 할 수 있으며, 삶의 영성은 공동체의 영성으로 묘사된다. 교리의 영성은 "바른"(right)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공동체의 영성은 "아름다움"(beautiful)을 나타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신앙의 영성은 강조하여 왔기에 쉐퍼에게 있어서 강조되는 공동체의 영성은 신선한 느낌을 우리에게 준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성이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균형과 조화가 있는 영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쉐퍼가 나누는 이 두 가지 영성은 근원적으로 또한 사랑의 영성이다는 사실이다.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표지가 된다. 사랑은 영성의 절정을 이루며, 영성의 모든 면을 포괄한다. 곧 이것이 라브리 공동체의 균형 잡힌 영성으로의 추구였다.

"가시적 교회의 순수성을 위한 최종 목적은 먼저 하나님에 대한, 다음으로 우리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의 관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둔다."(기독교 영성관, 398)
"성경 안에 있고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은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여야 한다. ...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는 영성을 적절하게 강조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라브리 공동체에서 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 참된 영성은 그러한 것들 속에서 균형을 위해 싸우는 나의 시도이다. 단지 추상적인 교리의 균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개개인과 단체가 살려내야 하는 균형이다."(기독교 영성관, 429)


4) 영성의 근거 : 기도

기도의 영성은 쉐퍼에게 있어서 근원적이면서 실제적인 영성이다. 근원적이라는 말은 그가 편이 상 구분하여 말하는 모든 영성에 있어서 동일하게 요구되고, 기본이 된다는 말이다. 기도가 실제적이라는 말은 단순한 의식으로서의 끝이 나서는 안되고, 삶의 능력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곧 성령의 9가지 열매가 기도의 열매로 맺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진정한 성도의 성화적 삶에 있어서 기도의 영성을 들 수 있는데, 특히 그의 라브리 사역은 이 점을 확인하게 한다. 특히 쉐퍼의 동역자 부인 에디드 쉐퍼의 말은 더욱 강한 설득력을 제공하는데, 라브리 사역에 있어서 네 가지 원칙은 기도의 영성을 확실히 보여준다. 라브리의 목적은 바로 이러한 기도의 영성에 확고하게 서 있었다. 기도의 영성을 빼놓고 쉐퍼의 영성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 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쉐퍼의 영성은 매우 영적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전인적, 전문화적 영성을 향한 강력한 행동의 배경에는 내적이며, 영적인 영성이 강한 기도의 물줄기와 더불어 도도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이렇게 정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삶과 일 속에서 실증적으로 보여 주자. 말하자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그것을 실증하기 위해 몇몇 영역에서 기도를 기초로 하여 살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다음 네 가지 구체적인 영역에서 기도로 살 것을 선언했다."(라브리, 18)

"우리는 이렇게 하도록 인도 받고 있다고 여겼다 - 즉, 우리의 일, 그리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실증이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 주님께서 이런 식으로 살도록 계속 인도하시는 한 말이다. 우리는 라브리 회 설립에 기초가 될 만한 원칙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1.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택하신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고, 그저 스키 타러 오거나 개방된 가정을 '이용'하기만 하려는 사람은 모두 막아 주시기를 기도하겠다고 했다. ...
2.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마다 그리고 달마다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것과 당신이 우리를 돕도록 보내 주시는 사람들을 위한 음식 등을 댈 충분한 돈을 보내 주시기를 기도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영적인 양식과 육적인 양식 모두 집에 온 어느 손님에게나 거저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3. 우리는 우리가 계획을 세우지 않고 여러 모로 하나님의 활동 계획을 알려 달라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
4. 우리는 또한 만일 이 일이 커 간다면, 우리가 광고하거나 우리를 도울 사람을 구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택하신 일꾼을 보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라브리, 148-149)

요약하면, 첫째, 기도로 필요한 재정 및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만 아뢴다. 둘째,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만 보내주시기를 위해 기도한다. 셋째, 사람이 장래를 계획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일을 계획하셔서 날마다 그 계획을 나타내 보이시기를 기도한다. 넷째, 하나님께서 사역에 필요한 동역자를 보내주시기를 기도한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기도의 철학이 라브리를 움직여서, "크든 작든, 널리 알려지든 덜 알려지든, 우리의 기도는 단지 하나님의 목적을 신실하게 이루려는 것이었다."(라브리, 19)

이러한 기도의 영성의 배경에는 실질적 체험을 배경으로 하는 나름대로의 확실한 기도의 신학이 정립되고 있었다.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하나님은 모든 영역에 있어서 전능하시다. 주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일하실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중 한 가지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영역에서 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에 어떤 생각을 불어넣으실 수 있다.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하는 강한 '충동'이나 '신념'을 느끼게 하실 수 있다."(라브리, 150)

생활의 영성과 기도의 영성의 불가분리성을 쉐퍼는 말한다. 라브리의 목적을 보면, 더욱 그들의 삶의 실질적 영성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영성은 기도의 영성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생활의 영성은 기도를 근간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이렇게 정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삶과 일 속에서 실증적으로 보여 주자. 말하자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그것을 실증하기 위해 몇몇 영역에서 기도를 기초로 하여 살기로 한 것이다."(라브리, 18)

5) 기본적 고려 사항들: 능동적인 수동성

쉐퍼는 참된 영성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선 잊지 않아야 할 세 가지 고려 사항들이 있음을 주지시킨다. 특히 진정한 영성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에 관한 대답들을(Know-How)을 구체화한다. 기본 전제는 "단지 우리 자신의 힘으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구체화하면, 첫째,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우리를 통해 하시는 것이다. 여기에는 능동적인 요소가 있다: 그리스도가 행위주체이어야 한다."(기독교 영성관, 276) 둘째, "성령의 사역이 존재한다. ... 그것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섬김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바 된 것이 성령이다."(기독교 영성관, 277) 셋째, "참된 영성은 우리편에서 단지 수동적이어서는 안 된다. ... 여기에는 능동적인 수동성이 있다."(기독교 영성관, 278)
영성의 방법론에 있어서 쉐퍼에게는 부정의 측면으로는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는 것이며, 긍정의 측면으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라는 성경에 근거한 두 축이 있다. 쉐퍼에게 있어서 "바로 이것이 '방법'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기독교 영성관, 279)
쉐퍼는 온전히 우리의 영성은 크리스천의 능력으로서, 그 "능력은 믿음으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역을 통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셔서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다."고 강조하면서도, 인상적인 점은 참된 영성은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단지 수동적이어서 만은 안 된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사는 것이 그러한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은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아무튼 참된 영성에 있어서 성도의 능동적 책임성을 부각시킴은 의미로운 점이라 하겠다.


III. 나가는 말


우리는 지금까지 프란시스 쉐퍼의 생애와 영성을 살펴보았다. 그의 생애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과 도우심이 있었던 생애였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라브리 공동체가 바로 그러한 그의 영적 생애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의 저작은 진정한 순례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독자로 하여금 친절하게 잘 가르쳐준다. 어렵지 않게 친절한 상담자와 같이 이야기한다, 아니 구수한 할아버지처럼 대화한다. 그러기에 한국의 많은 독자들은 그를 부담 없이 사랑하는 것 같다.
예배당에 갇혀 버린 영성에서의 탈피를 요청하는 쉐퍼는 실제적 성경적 영성을 말한다.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영성으로서 그 기도를 골방에만 가두어버리는 기도가 아니라, 삶의 전 영역을 능력 있게 하는 영성의 견고한 반석이 된다. 쉐퍼의 영성은 첫째는 바른 교리의 영성이며, 둘째는 아름다운 삶의 영성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묶어주는 말이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된다. 곧 쉐퍼의 영성은 사랑의 영성이다. 교리와 삶을 연결시키는 성화론에 강조점을 둔다. 문화 변혁적 사명을 강조하는 쉐퍼는 우주적 영성을 공동체의 영성으로 강조한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천지의 주가 되게 하는 보다 폭넓은 바른 영성을 내세운다. 이런 맥락에서 쉐퍼를 우리는 20세기의 진정한 청교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영성 내지는 경건성이 너무 일방적인 되어버린 한국교회, 영성이 예배당에 갇혀버린 한국교회는 그러기에 쉐퍼의 사상에서 해갈을 경험하는 것이다. 특히 쉐퍼의 전인적이며, 모든 문화까지를 포함하는 보다 적극적이고 문화 변혁적 영성에로의 선언은 움추린 채 활짝 펴지 못하고 자존감을 상실한 한국교회에 바른 신앙의 정체성을 일깨워 줌으로 신앙의 영역이 예배당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을 포함하고 있다는 비전을 심어주었다. 라브리 공동체를 통한 쉐퍼의 영성은 그러기에 바르고, 아름다운 영성이었다. 라브리의 쉐퍼 부부는 진정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이제 제 2세기를 맞이하는 한국교회는 영성의 또 다른 한쪽을 바르게 키워나가는 성숙한 교회로 우뚝 서야 할 것이다.

발표: 2000. 3. 27. 강남 중앙교회에서
기독교 사역동역회, 한국 라브리 주관

참고문헌

성인경 편, 프란시스 쉐퍼 일기, 서울(예영커뮤니케이센) 1996.
리랜드 라이큰, 이 세상의 성자들, 서울(생명의 말씀사)
에디드 셰퍼, 박정관 옮김, 라브리, 서울(홍성사) 1992.
프란시스 쉐퍼, 김진흥 옮김, 기독교선언, 서울(생명의 말씀사) 1995.
프란시스 A. 쉐퍼, 박문재 옮김, 기독교 영성관, 서울(크리스찬 다이제스트) 1995(2판).
에르네스트 슈투플러, 송인설, 이훈영 역, 경건주의 초기역사, 서울(솔로몬) 1993.
주도홍, 독일의 경건주의. 서울(기독교 문서선교회) 1996(2판).
주도홍, 개혁교회사, 서울(솔로몬) 1998.
Scott R. Burson; Jerry L. Walls, C. S. Lewis & Francis Schaeffer, Inter Varsity Press, Downers Grove, Illinois 1998.
Francis A. Schaeffer, The complete Works of Fransis A Schaeffer, Vol. 1-5, Westchester, Illinois, Crossway Books, 1987(2판)
Martin Brecht(편), Der Pietismus vom siebzehnten bis zum fr hen achtzehnten Jahrhundert,
G 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93.
M. Greschat(편), Orhtodoxie und Pietismus, Stuttgart, Kohlhammer 1982.
Jou, Do-Hong, Theodor Undereyck und die Anf nge des reformierten Pietismus, Bochum,
Universit tsverlag Dr. R. Brockmeyer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