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프란시스 쉐퍼의 신학적 뿌리[7]-신학적 의미 / 신동식목사

새벽지기1 2016. 3. 17. 07:15

Ⅳ.결론 - 프란시스 쉐퍼의 신학적 배경이 주는 의미

우리는 프란시스 쉐퍼의 신학적 뿌리가 어디에 있는 가를 긴 여정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물론 교의신학적인 관점에서 일일이 살펴보지는 않았다. 이렇게 한 의도는 우리가 살펴 본 성경관, 교회관, 문화관, 사회관의 입장을 통해서라도 그의 사상이 어디에 있는 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으리라는 사실 때문이다. 동시에 쉐퍼에 대하여 알려진 사상에 대한 배경을 좀 더 효과적으로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프란시스 쉐퍼의 신학적 뿌리는 철저하게 개혁주의 전통에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하여 매우 의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제임스 패커가 지적한대로 쉐퍼는 "20세기 중반에 영어 사용권의 복음주의에서 치명적으로 결핍되었던 문제들을 탁월하게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어권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문제요 결핍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핍이 있었던 것은 한국 교회의 정치적 상황과 매우 밀접한 것이다. 분단 국가로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대를 살아온 한국 교회가 살아 남기 위한 자구책의 모습 속에서 볼 수 있다. 특별히 독재 국가 권력의 영향아래 철저한 정교 분리의 원칙을 고수한 교회는 어느 면에서도 사회 문제에 소리를 내지 않았다. 철저하게 개인 구원과 교회 성장에만 몰두하는 것이 개혁주의 교회의 모습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정치와 사회 참여는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교회가 하는 것이라고 치부하였다. 이러한 구도는 점차로 교회의 이분화를 촉진시켰고 복음주의 교회 특별히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교회는 사회속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교회의 영향력의 감소를 가져왔고 결국 그토록 몸부림치던 교회의 성장은 커녕 교회의 감소를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프란시스 쉐퍼의 영향은 많은 도전을 주었다. 특별히 문화적 대중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80년대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혼탁한 시기였다. 젊은 기독인들이 어떠한 자리에 서 있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세계관 운동과 더불어 소개된 쉐퍼의 사상은 고민하던 젊은이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정교분리와 개인구원 그리고 교회성장에 파묻혀 있던 교회는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이는데 엄청난 난관이 있었다. 더구나 프란시스 쉐퍼의 사상은 한국 교회의 상황으로는 너무 급진적인 것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미성숙한 한국교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교회는 말로는 개혁주의, 복음주의라 하지만 사실은 개혁주의와는 전혀 관계없는 교회를 형성하고 있다.

16세기의 종교 개혁 그리고 18세기의 부흥 운동 그리고 19세기의 대각성 운동은 개혁주의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프란시스 쉐퍼는 이러한 놀라운 부흥의 역사 가운데 흐르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파악하였다 그리고 그대로 행동하였다. 말에 갇혀있지 않고 신학을 삶으로 분명하게 보여 준 전도자요 사상가였다. 그의 사상은 참다운 개혁주의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개혁교회의 결핍을 바르게 구현해 냈기 때문이다. 묻혔있던 개혁주의 신학사상을 대중앞에 드러내 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쉐퍼의 사상의 신학적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았다. 20세기라는 시대에 참된 실재요 참 진리인 하나님을 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살다간 쉐퍼의 삶과 사상이 한국 교회 앞에 바르게 접목되어지기를 기대한다. 쉐퍼는 숨을 거두기 전날 이렇게 기도하였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전 저의 일을 끝냈습니다. 저를 본향으로 데려가 주십시오.저는 지쳤습니다."

하나님은 현대의 사상적 혼돈시기에 참 진리를 위하여 싸웠던 사랑하는 자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본향으로 데려 가셨다. 위대한 복음적 개혁주의자 그리고 위대한 문화사역자 그리고 더욱 위대한 사회 개혁자인 쉐퍼는 이 땅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역을 마치고 본향으로 간 것이다. 쉐퍼가 간 길에는 정말로 많은 씨앗을 뿌려졌고 그를 통한 복음의 열매는 20세기의 혼합된 세계관속에 신음하며 살고 있는 영혼들에게 단비와 같은 신선감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복음의 사역의 만개는 21세기가 될 것이다. 특별히 한국에서 더욱 꽃피게 될 것을 소망해본다. 


오늘도 여전히 교회 성장주의에 찌들려 있으므로 나의 주변에서 죽어가며 소리치는 아우성을 외면하는 지도자와 교회가 아니라 현실의 아픔을 분명하게 목도하면서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외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민족이 가야 할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며 함께 하나님의 나라로 가지고 이끌어주는 지도자 필요한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