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360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9)(막15: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15:34)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은 무슨 이유로 그런 절규를 내뱉으셨을까요? 그것은 예상 외로 단순한 문제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입니다. 오늘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구원의 길로 전제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실체에 접근하는데 곤란을 겪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말하는 구원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그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 처형의 방식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얼마나 저주스러운 것이었는지도 말씀드렸습니다.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8)(막15: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15:34) 어제 묵상의 마지막 문장을 오늘 보충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경험한 절망이 이미 이전부터 계속된 것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공생애 중에 절망을 느꼈을 것이라는 말이 가능할까요?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관점으로만 예수님을 판단하고 평가했습니다. 자신들의 기분에 맞으면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맞지 않으면 철저하게 거부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니고데모처럼 나름으로 진정성이 있는 사람들도 결국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의미(로마서 14:8-9)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의미 (로마서 14:8-9)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주인”이라는 표현은 오늘 우리 시대에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주종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노예제가 존재하던 사회에서 바울은 사나 죽으나 “주”님을 위해 사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더구나 1세기에 로마에 압제를 받던 식민지의 상황을 고려하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일은 또다른 측면의 울림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쉽게 부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습니다. 1세기 당시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사람들이 ‘주’(헬라어, ..

예수 다시 사셨다!(막16:1-8)

해설: “안식일이 지났을 때”(1절)는 오늘로 치면 토요일 저녁 이후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해가 진 시간부터 다음 날 해 지기 전까지를 하루로 계산 했습니다. 그런 계산법에 의하면, 예수님은 “사흘 후”가 아니라 “사흘만에” 혹은 “사흘째 되는 날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안식일 예비일 오후 세 시에 운명하시어 안식일을 지나 그 다음 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안식일에 어떤 장례 행위도 할 수 없도록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안식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료를 사 두었는데, 향료를 시신에 바르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습니다.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새벽에 무덤으로 가면서 여인들은 무덤을 막아 놓은 돌을 어떻게 옮길 수 있을지 걱정합니다..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거짓 선지자라(신 18:15-22)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원한 것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구하였습니다. 모세가 죽은 이후에 있을 하나님과의 대면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들이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구한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죽음을 겪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누가 하나님께 직접 말씀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직통 계시를 말하는 이들의 무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간구가 합당하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합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출현입니다. 선지자를 세우신 하나님은 그의 입에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말씀을 듣지 않으면 심판을 ..

내 인생길 주님이 함께 하신다.

내 인생길 주님이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먼저다. 내 인생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도구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드러나셔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종일뿐이다. 원수마귀를 겁낼 필요가 없다. 예수님 이름으로 나가는 길에 나를 이길 적수는 없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오늘도 나는 반드시 승리한다. 내 갈길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에수의 이름으로 나가면 열 번 넘어질지라도 아주 넘어지지 않는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는가! 내 인생에 먹구름이 몰려와도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주님이 붙잡아 주신다. 모진 풍랑일 때에 주님이 잠잠하라 명하시면 내 인생길 평안이다. 두려워 말라하신다. 염려하지 마라 하신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신다. 믿는 자..

하나님 나라는 공의와 긍휼의 나라입니다.(신 19:1-21)

신 19:1-21 묵상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의와 긍휼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도피성 제도는 언약 공동체를 위해 세운 것으로 보복의 악순환을 막으려는 공의의 장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법정의와 경제정의의 나라입니다. 공정한 재판과 경제질서가 있는 나라입니다. 섬기며 나누는 사랑과 공의의 공동체입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성령님께서 저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소서!

긍휼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신 19:1-21)

신 19:1-21 묵상입니다. 도피성 제도는 본의 아니게 실수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이웃의 경계표 존중은 특히 부자들에게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의 소유를 강탈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두세 명 재판 증인 제도의 핵심은 억울한 희생자를 막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공정한 재판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눅11: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11:34-36)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때 말하는 눈은 보는 눈, 분별하는 눈, 생각하는 눈, 예측하는 눈, 소망의 눈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런 눈은 우리 안에 밝은 빛이 있어야 이런 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빛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시며, 진리의 성령이십니다. 우리 안에 어둠이 있으면, 그 어둠을 몰아내고 온 몸을 밝히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부어주..

언약 갱신의 대상(신29:10-15)

언약 갱신의 대상(신29:10-15) 본문은 과거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시내산 언약을 갱신하기 위하여 모압평지에 모인 대상들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는 부분이다. 이제 그 대상들을 살펴보면 백성 중 남자와 여자와 젖먹이까지 모두 참여했다(10-11절). 주목할 것은 율법을 지키고자 맹세한 이방이과 종, 그리고 모세 당시 생존한 사람뿐만 아니라 장차 태어날 후손들까지 모두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14-15절).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언약은 인류의 시조부터 최후의 인류에게까지 시공을 초월하여 그 효력이 미친다는 교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