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시간’이 뭐꼬?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6. 11. 06:38

    지금 내 책상 위에 몇 권의 책이 놓여 있소. 그중의 하나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하나님 이야기>요. 정가가 700원이고, 발행연월일이 1973년 12월5일이오. 내가 만으로 스물한 살을 바로 앞에 둔 때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신학생 시절이었소. 저 책을 사들고 책상 앞에 앉았던 그 시절이 눈에 선하구려. 37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때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읽어볼 요량으로 내 서재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던 걸 어제 꺼내서 먼지를 털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소.

 

     내가 오늘 그대에게 릴케의 책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오. 37년이라는 세월을 말하고 싶소. 그 세월이 뭐요? 그 사이에 나는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되고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고, 목몇몇 교회에서 목회자로 살았고, 지금 이렇게 나이를 먹었소. 그런 흔적으로 37년이라는 세월을 확인할 수 있겠소? 그런 것을 확인하느라 사람이 자신의 업적을 내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소. 그것이 아니면 자신이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으니 말이오.

 

     그런데 말이오. 아무리 생각해도 37년의 세월이 너무 빨라서 그런 세월이 실제로 있었는지 느낌이 분명하게 오지 않소. 내가 어디 연극 무대에 잠간 올라갔다가 내려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소. 삶이 그림자와 같다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 헛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이가 들수록 더 실감하게 되오. 그대가 젊다면 이런 말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을 거요.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시간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것뿐인지. 우주의 나이가 보통 120억년 정도라고 하는데, 그 계산도 따지고 보면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오. 우주의 시간은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시간과는 다를 거요. 120억년이라는 숫자도 절대적인 것은 아닌 것 같소. 시간 역시 상대적이라는 말에 일리가 있소. 잊지 마시오. 언젠가 우리의 시간 경험이 완전히 허물어질 때가 온다오. 태양이 사라지는 순간일 수도 있고, 더 궁극적으로는 우주의 마지막일 수도 있소. 개인적으로는 죽음이 바로 그런 순간이오. 신앙적인 용어로 말하면 하나님과 일치하는 순간이 바로 그때요. 그 순간이 오면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될 거요. 그걸 영생이라고 하오. 깊이 생각해 보시오. “시간이 뭐꼬?”(2010년 6월15일, 화요일, 늦은 저녁 비 쬐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