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제도는 기독교의 일치를 위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일치의 역할을 하려면 교회제도는 권위주의적 구조, 또는 전통의 동일성에 대한 보증, 또는 독단적 사법 권위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로마가톨릭교회에 속한 많은 이들도 교황제도가 기독교 일치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공헌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교회제도의 역할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교황제도의 권위주의적 구조를 변혁해내는 시도가 비록 예비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진전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 위한 것이라면 개신교회도 교황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있다. 여기서 결정적인 조건은 종교개혁과 르네상스에 의해서 밝혀진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성숙이라는 보화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판넨베르크, 신학과 하나님 나라, 140 쪽)
개신교 신자들은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해서 복잡한 심사를 보이고 있소. 가장 극단적인 이들은 가톨릭을 이단으로 보기도 하오. 그렇게 보는 분들은 기독교 역사를 잘 모르거나 개신교 패권주의에 심정적으로 물들어 있는 거요. 가톨릭을 이단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들도 있소. 이들도 기독교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오. 가톨릭은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개신교회의 뿌리요. 그들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의 뿌리를 부정하는 격이오.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형제로 생각해야 하오.
혹시 그대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구려. 물론 우리 개신교회의 입장에서는 중세기에 비해서 많이 달라지긴 했다고 해도 교황제도를 지지할 수는 없소. 이것만은 기억해 두시오. 교황제도가 교황을 신성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오. 교황의 칙령을 성서 못지않게 중요한 문서로 간주하는 것은 그들의 질서에 속한 문제요. 교황이 혼자서 마음대로 칙령을 만들지는 못하오. 로마가톨릭교회 전체의 생각이 담기는 것이오. 사실은 신약성서도 교회의 생각을 담은 문서라오. 성서가 먼저 있었던 게 아니라 교회가 먼저 있었소. 그런 점에서 교회의 결정을 중요하오.
판넨베르크는 교황제도를 권위주의의 관점이 아니라 교회 일치의 관점으로 받아들일 것을 권고하고 있소. 가톨릭교회도 교황제도가 교회일치를 위한 역할을 감당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소. 그것이 당장 효과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오. 어쨌든지 가톨릭의 제도를 인정할 필요는 있소. 무조건 모든 것을 인정하라는 말이 아니오. 판넨베르크의 표현대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성숙을 전제하고 하는 말이오. (2010년 6월12일, 토요일, 그리스와의 축구에서 2대0으로 승리한 날, 비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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