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노무현(4)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6. 4. 06:12

     오늘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 되는 날이오. 어제부터 지금까지 장마처럼 계속 비가 내리는구려. 그를 생각하면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리는 것 같소. 아주 복잡한 심사가 내 마음에 뒤섞여 있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가를 잃었다는 안타까움이 가장 크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암시하거나 방조한 어떤 이에 대한 분노도 섞여 있소. 다음 정권이 지금 미국에 도피하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엄정하게 조사하면 전직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은 검은 손길이 밝혀질 것이라 보오.

 

     노 전 대통령이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결백하다는 말이냐, 가족이 돈을 받은 건 분명하지 않느냐 하고 묻지는 마시오. 그도 허물이 많은 사람이오. 그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소. 문제는 검찰의 먼지떨이 식 표적 수사요. 비굴하게 생존을 구걸하도록 몰고 갔소. 그때의 이야기를 여기서 다시 꺼내기도 싫소.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핑계로 몸에 때가 있는지 확인할 테니 벌거벗으라고 요구한 것과 같소. 그것은 때를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더 이상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로 모욕을 주려는 것이오. 조폭들도 그렇게 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비열한 짓이오.

 

     그런데 말이오. 모든 진상이 나중에 밝혀진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미 간 사람은 돌아오지 못하오. 노 전 대통령도 유서에서 남 탓하지 말라고 말했소. 그래도 정의를 세워야 하지 않느냐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 거요. 그렇기도 하오. 단죄가 필요할 때는 단죄를 해야 하오. 알곡과 쭉정이를 늘 함께 뒤섞어놓을 수는 없소. 당장은 아니라 하더라도 때가 되면 정의의 심판이 있긴 있어야 하오. 그렇게 정의의 칼을 벼리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겠소? 그러나 노무현의 뜻을 따른다면 원수 갚는 일은 부질없소. 분노의 불길은 태울 수 있으나 ‘사람 사는 세상’을 일으킬 수는 없소. 악은 우리가 무찌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멸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오. 악은 우리의 힘으로 완벽하게 제어할 수 없소. 그 일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소.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도록 준비하는 게 가장 지혜로운 게 아닐까 생각하오.

 

     도대체 무얼 준비하라는 말인가, 하고 이상한 생각이 드시오? 잘못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책임을 지우는 게 준비 아니냐, 하고 말이오. 이런 문제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게 좋겠소.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이오. 원수를 갚는 것보다는 노무현 정신을 살리는 게 그를 추모하는 가장 바른 길이라는 거요. 그가 대통령 퇴임 후에 고향 봉하마을에 돌아가서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를 돌아보면 답이 나올 거요. 구체적으로 농촌 살리기를 해야 하오. 지금 웬만한 농촌에 젊은 사람이 없소. 농촌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오. 사람 사는 세상은 농촌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오. 도시도 사람 사는 세상이 돼야 하오. 이런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거요. 또 하나는 인문학 정신을 살리는 거요. 그가 책읽기에 심취했다는 사실은 앞글에서 이미 지적했소. 그는 일찍이 인터넷 세상을 알고 있었소. 인터넷은 해방공간이오. 인터넷이 잘만 운용되면 인문학을 살리는 지름길이 될 수 있소. 노무현 재단이 운용하는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은 지금 이런 일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소. 정치적인 색깔을 줄이면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운동하는 이들의 광장처럼 운용되고 있소. 정기 후원자가 2만 6천여 명이나 된다 하오. 계속 늘고 있소.

 

     지금 봉하마을은 성지(聖地)가 되어가고 있소. 나는 아직 못 가봤소. 마음을 굴뚝같았으나 천성이 게을러서 못 갔소. 금년에는 6월 중에 한번 가볼 생각인데, 그대도 같이 갈 생각이 있소? 준비하고 있으시오. 나중에 연락을 주겠소. 비가 오는데도 오늘 많은 사람들이 왔다 하오. 1주기래서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몰렸지만, 다른 날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소. 이런 장소는 우리나라에 별로 없소. 전라도에 한 곳, 경상도에 한 곳이오. 전라도 광주의 망월동에 있는 국립 5.18민주묘지와 경상도 봉하마을의 노무현 묘소요. 두 곳 모두 상징성이 강하오. 민주와 죽음이 자리하오. 둘 다 억울한 죽음이오. 전자는 민중들의 죽음이라면 후자는 대통령의 죽음이오. 하기야 노 전 대통령도 민중을 자처했으니, 양쪽 모두 똑같은 죽음이라 할 수 있소.

 

     노무현은 갔소. 그가 간지 1년이 흘렀소.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그는 정치를 넘어 신화가 되고 있소. 지금 정부가 그렇게 부정하려고 하지만 막지 못할 거요. 그가 살아서 한 일보다 죽어서 한 일이 더 많을 거요. 다 그럴 만하오. 마지막 순간까지 온 몸을 던져서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씨를 뿌렸소. 앞으로 그 씨가 열매를 거둘 것으로 믿소. 물을 주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하오. 각자가 살아가는 그 자리에서 작은 일이라도 열심히 하다보면 사람 사는 세상이 조금 더 가까이 오지 않을까 하오. 분노와 슬픔을 거두고, 이제 힘을 냅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