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전도서 2장: 가장 좋은 것

새벽지기1 2022. 12. 3. 07:25

 

해설:

전도자가 계속 말을 이어갑니다. 그는 쾌락을 즐기면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온갖 즐거움을 찾아 보았지만 그것도 헛되었다고 고백합니다(1-11절). 술에 취해도 보았고, 거대한 토목 공사를 벌이기도 했고, 농사 일과 목축업으로 크게 성공하기도 했으며, 온갖 보화를 가져 보기도 했고, 수 많은 처첩을 거느려 보기도 했습니다. 절대 권력으로 하고 싶은 일을 다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되었습니다. 왕위를 이어 받았다 해도 새롭게 할 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전도자는 지혜를 얻는 것에 희망을 걸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혜 있는 자와 어리석은 자의 운명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12-14절). 지혜를 얻어도 어리석은 자와 같이 죽음으로 인생이 끝난다면, 지혜로운 것도 결국 헛되다는 결론에 이릅니다(15절). 죽은 후에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16-17절). 전도자는 자신이 이루어 놓은 모든 일을 후대에게 물려 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억울함을 느낍니다(18절). 그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일지 어리석은 사람일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19절). 일생 동안 수고하여 얻은 결실을 수고도 하지 않은 사람이 누리게 되니, 이 또한 부당한 일입니다(20-23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전도자의 결론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눈을 돌리게 만듭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매일 주어지는 나날 동안 하루치의 수고에서 의미를 찾고 하루치의 즐거움 속에서 기쁨을 얻는 것이 헛됨과 덧없음을 극복하는 길입니다(24-25절).

 

묵상:

무엇인가를 누려 본 사람이 “내가 해 봤는데, 별 의미 없어!”라고 말할 때, 그것을 누려 보지 못한 사람은 은근히 화가 납니다. 헛되고 덧없다 해도 한 번 누려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없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말이 가진 자의 한가한 고백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흔히 추구하는 일들(쾌락, 부, 명예, 성취, 지식 등)은 만족과 안전과 편리를 제공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누려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것을 누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전도자가 그런 것들을 누려 보았어도 헛되더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런 것이 모두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것에서 궁극적인 만족과 기쁨을 얻지 못하겠더라는 뜻입니다. 궁극적인 만족과 기쁨은 해 아래에 있는 것들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해 위에서 즉 하나님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잠시 동안 갈증을 해갈시켜 주는 진정제일 뿐입니다. 

 

따라서 어리석음 중 가장 큰 어리석음은 인생에서 성취할 수 있는 어떤 것에서 궁극적인 만족과 기쁨을 얻으려는 태도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허무함의 쓰디 쓴 맛을 보고 “모든 것이 헛되더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온전한 기쁨과 안식과 만족을 하나님에게서 얻고 매일 주어지는 하루치의 수고와 만족을 겸손히 받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삶의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