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전도서 4장: 산다는 것

새벽지기1 2022. 12. 6. 07:45

 

해설:

전도자는 계속하여 자신이 관찰한 헛된 일들에 대해 서술합니다. 1절부터 6절까지에서 전도자는 폭력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연약한 이들이 고통 당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아 보입니다. 아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때로 세상은 그 정도로 각박하고 잔인합니다.

전도자는 또한 혼자 살면서 일만 하는 사람에 대해 말합니다. 즐기지도 못하고 일하여 재산을 모으는데, 아무리 모아도 그의 성에 차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것도 헛된 일입니다(7-8절). 사람은 홀로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연대할 때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습니다(9-12절). 

 

13절부터 16절까지에서 전도자는 신하의 충고를 무시하는 늙은 왕보다 슬기로운 젊은이가 더 낫다고 말합니다. 때로 가난하고 젊은 사람이 왕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왕위에 오르면 그는 완고하고 오만해져서 백성의 원성을 삽니다. 그러니 그것도 헛된 일입니다.

 

묵상:

전도자는 이 세상의 악한 현실을 보면서 살아서 고통 당하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낫고, 죽은 사람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청소년기에 읽은 염세주의 철학자의 말이 생각 납니다. 인간의 생명은 한 남성과 여성의 하룻밤의 정사로 인해 아무 의미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것이고, 태어나서 겪어야 하는 것은 슬픔과 고통 뿐이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거나 태어나서 일찍 죽는 것이 가장 복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주장에 현혹되어 수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정작 그런 주장을 한 철학자들은 만수를 누렸습니다. 

현실을 보면서 차리리 죽는 것이 더 낫고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한다면, 상담가를 찾아가 마음의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곳이야말로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아 보이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빅터 프랭클 같은 사람의 증언을 보면 그런 상황에서도 살아야 할 의미와 이유를 찾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의 상황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태어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 있는 것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에 죽음을 순명으로 받아 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망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