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생명 번성의 축복 (창세기 1:26~28)

새벽지기1 2020. 12. 13. 08:06

“영원한 나라와 생명 누리는 백성들이 충만하게 되는
하나님의 비전에 우리 모두 동참해야 합니다.”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 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15세에서 64세의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들어서 국가 경제 흐름이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대한민국은 인구절벽의 위기에 처한나라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하여 사망하는 숫자보다 모태에서 사망하는 인원이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낙태만 하지 않았어도 우리나라 인구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가 이 땅에 있었다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 번성의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았다면 이런 나라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올해 6월까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84명입니다. 세계 출산율 2.1명에 비해서 훨
씬 낮습니다. 이 추세로 가면 2030년부터 인구가 줄어듭니다. 요즘 모이지 못하는 위기를 겪고 있는데 앞으로는 모일 사람 자체가 없는 위기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입니다. 이 현상이 계속되면 전 세계에서 가장 적게 출산하는 나라가 되고, 2050년에는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되고, 결국 영국 옥스퍼
드 연구소에서 발표한 대로 지구상에서 인구문제로 가장 먼저 소멸할 위험에 처한 국가가 됩니다. 매우 심각한 분석입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위정자들이 이 문제를 인식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해결해보려고 했지만,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출산율이 더 저하되고 있습니다. 정치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
가 저출산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창세기 1장 28절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명령이 왜 주어졌는지, 이 명령대로 순종하지 않았을 때 우리가 겪는 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위기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입니다. 인구절벽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생명 축복의 명령에 담긴 복을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외형적인 면에서 하나님을 닮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 형’ 을 영어로 ‘이미지’ 라고 번역하는데 원형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원형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그분과 특별한 교제를 나누며 교통하고, 연합할 때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 형상의 능력이 발휘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 외에 자연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은 없습니다. 자연의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자연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지혜와 영광이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형상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통해 영광 받으시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과의 교제를 통하여 기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명령이 “생육하고 번성하라. 그리고 땅에 충만하라. 땅에 가득하고 땅을 정복하라”입니다. 자연의 그 어떤 피조물에게도 이런 명령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생물들에게도 번성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들이 이 땅에 충만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
니다. 사람들은 땅에 충만해 보지도 않고 인구폭발을 염려합니다. 그래서 ‘ 인구가 많으면 먹을 것이 없어지지 않겠느냐’ 등 불필요한 걱정과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을 하면서 인구를 제한했습니다. 어리석은 정책들을 통하여 “이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땅에 충만함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은 인간을 하나님의 대
리자로,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원형이신 하나님과 연결된 하나님의 형상들이 이 땅에 충만함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모든 만물을 통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인간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제사장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인간 안에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또 인간이 모든 피조물을 대리해서 하나님과 소통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역할을 하는 대리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인간이 순종하지 않았을 때 인류의 위기, 대한민국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실제적인 이유


저출산의 위기를 분석하는 수많은 조사가 있습니다. 그 조사 결과를 보면 현실적인 이유들이 나옵니다. 물론 간절하게 결혼과 출산을 원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분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현실적인 이유들을 말합니다. 양육비가 많이 들고, 주거비가 상승하고, 실업 문제, 경기침체 등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이런 문제들이 지금보다 더욱 심각했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이런 문제들이 더욱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을 많이 낳아서 잘 키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를 낳지 않는 현실적인 이유라고 하지만 실제적인 이유가 아닙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게 되는 실제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기중심적인 가치관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유행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 욜로(YOLO)’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자기중심적으로 살라’ 는 것입니다. ‘ 딩크(Double Income No Kids)족’ 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부부의 삶만 살자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가치관 때문에 자녀를 향한 희생, 섬김, 하나님의 명령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 부모와의 불화로 인해 가정에 대한 기대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기성세대의 책임입니다. 어느 청년부 목사님이 어느 부부와의 대화를 기록했습니다. 크리스천이면서도 과거 비혼주의자였는데 지금은 가정을 이루게 된 청년 부부와의 대화입니다.
“과거에 왜 비혼주의자였습니까?”
그때 청년 부부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랐지만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행복한 모습을 보지 못해서 비혼주의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왜 결혼하고 출산까지 하게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온누리교회 출석하고 행복한 가정을 많이 보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책임입니다. 온누리교회에 출석하고 행복한 가정을 많이 보면서 ‘ 나도 가정을 이뤄서 결혼하고 출산을 해야겠다’ 고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오늘 이 시대 많은 젊은 이들이 결혼과 가정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기성세대들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문제입니다. 이것이 결혼과 출산, 저출산 문제까지 이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생명의 참된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최근 뉴스에서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이 어린 생명을 가혹하게 다루고, 자신이 낳은 생명마저 죽음에 이르게 한 끔찍한 일들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못하는 무지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출산의 세 가지 가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출산의 가치를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출산은 ‘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낳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는 창조의 귀한 통로가 되고, 동참하는 은혜입니다.


또 출산은 ‘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가 전하는’ 것입니다. 

성인을 전도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세상적인 세계관, 하나님 없는 세계관과 가치관,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에 물들어 있
는 성인을 예수 믿게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 태어난 아기를 믿음으로 양육하고, 10대 이전에 부모의 말을 잘 따라는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훌륭한 전도요, 확실한 전도입니까? 만일 자녀가 이교도 가정에서 자랐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 이슬람 교도들은 한 가정에서 자녀를 평균 여덟 명씩 낳습니다. 크리스천
가정은 한 명 낳을까 말까 하는데 이슬람 가정은 여덟 명씩 낳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겠습니까? 대한민국에도 이교도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기독교인이 많다고 하지만 언제 뒤바뀔지 모릅니다. 차세대 주일학교는 점점 감소하고, 이교도들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우리가 전도하고 선교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속도입니다. 한 사람을 예수 믿게 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여덟 명씩 불신자들이 나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최고의 전도는 출산입니다.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은 최고의 전도이자 선교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교회 안에서 출산이 장려되는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또 출산은 ‘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것’ 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깨닫게 됩니다. 부모가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그 영혼은 분명히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아버지학교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심각한 죄에 연루되어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의 70% 이상이 아버지와 올바르지 않은 관계에 있다고 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 은혜의 통로가 될 수도 있고,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의 결단입니다. 참된 행복은 우리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어려운 환경과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생명의 출산에 참여하고, 놀라운 역사에 쓰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 모세의 부모들입니다. 모세가 보여준 믿음의 결단이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출생했 때 그 아이를 석 달 동안 숨겼습니다. 이는 그 아이가 남다른 것을 보고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히 11:23).
모세의 부모는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모
세의 부모가 왕의 명령을 무서워했다면 모세는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 환경이 가져다주는 무서움이 있습니다. 주거비, 양육비, 교육비, 경제적 위기 등이 우리를 무섭게 할 것
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환경을 무서워하고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생명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
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 보아스와 룻이 보여준 믿음의 결단을 본받아야 합니다. “‘내가 또한 말론의 아내인 모압 여자 룻을 내 아내로 사
서 그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유산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가운데서나 그의 성문에서도 없어
지지 않게 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그 증인입니다!’ 그러자 장로들과 성문에 있던 사람들이 다 말했습니다. ‘ 여호
와께서 당신 집에 들어올 그 여자를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처럼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당신이 에브
랏에서 잘되고 베들레헴에서 이름을 떨치기 바랍니다’”(룻4:10~11). 보아스와 룻의 결혼식에서 주고받은 말입니다. 룻은 모압여인입니다. 남편이 죽고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여인입니다. 그래서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나오미의 남편의 친족입니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지만 그 사람은 기업을 무르고, 그 가정을 책임지는 일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제도가 있었지만 강제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그 책임을 자기가 감당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데 책임만 지는 결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고 책임지는 결혼을 선택한 것입니다. 룻이 자기만 생각했다면 나오미를 따라올 이유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죽었으면 룻의 고향인 모압에서 사는 것이 훨씬 편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있지만, 당시에는 더욱 심했습니다. 특별히 모압 여인이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유대 마을에 와서 산다는 것은 온갖 시선과 차별을 당할 각오를 하는 걸음이었습니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이었다면 할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보아스와 룻의 만남은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을 뛰어넘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보아스와 룻을 통해 이새를 낳고, 이새가 다윗을 낳았습니다. 이러한 축복의 가정이 되게 하시고, 메시아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장애물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돌이켜 보면 결혼은
믿음으로 하는 것 아닙니까? 다 알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아스와 룻처럼 믿음으로 가정을 이룬 것입니다.

 

셋째, 요셉과 마리아가 보여줬던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자 마리아가 대답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의 여
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마리아에게서 떠나갔습니다”(눅 1:38). 당시 정혼한 상태에서 마리아가 잉태한 것은 수치를 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매우 위험해 보이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험해 보여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하면 복이 임합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마리아에게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마리아를 의심해서 끊고자 했습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요셉에게 필요한 용기가 무엇입니까? 마리아의 말을 믿고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보여주었던 믿음의 결단을 통하여 아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도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인간의 작은 생명으로 올 때 헤롯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아기들이 학살 당했습니다. 마리아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요셉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이 모든 삶의 여건과 어려움과 장애물을 뚫고 아기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생명을 보호하셨고, 그 모든 어려움을 뚫고 한 생명으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생명만이 소중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세상에 보내신 모든 생명이 소중합니다. 육신의
생명이 왜 중요합니까? 그 육신의 생명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임함으로써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때문입
니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백성들이 충만하게 되
는 하나님의 비전에 우리 모두 동참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많은 위험, 두려움, 악조건을 하나님께서 이기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역사상 인구가 완전히 붕괴하면 다시 회복된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10년 이내에 반등해야 합
니다. 하나님 백성들의 가정이 나서야 합니다. 이 일을 최고의 기도제목으로 여기고 생명이 번성하는 축복을 회복하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믿는 가정에서 자라난 이들이 더 많아지도록, 한국 교회 성도가 더 많아지도록 우리 모두 기도해
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