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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의 형편없는 소식(고전1:11)

새벽지기1 2019. 3. 25. 06:54


고린도 교회의 형편없는 소식(고전1:11)

 

어느 긴 겨울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 사역을 하면서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썼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머물면서 사역하는 기간에 고린도 교회는 그의 가슴을 칼로 에이 듯이 괴롭혔다. 하늘 너머, 바다 건너, 땅 저편에 위치한 고린도 교회에 관한 소식이 조금씩, 조금씩 바울의 귀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인 글로에가 보낸 몇 사람이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바울에게 알려 주었다. 전해준 소식은 고린도 교회 안에 "분쟁이 있다"는 것이었다(고전1:11). 사람마다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

 

고린도 교회는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틀림없다. 이 소식은 바울의 마음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닌가?(고전12:27) 몸을 조각낸다면 어떻게 생명이 부지될 수 있는가? 분열된 교회는 더 이상 생명을 가지고 있는 교회라고 부를 수가 없다. 그런데 이보다도 사도 바울을 더욱 경악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고린도 교회에 "음행이 있다"는 소문이었다(고전5:1). 음행 중에서도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것이었다. 고린도는 당시에 온갖 음란한 짓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 도시였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내에 발생한 이런 음행은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극악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는 이처럼 악질적인 음행 사건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가볍게 처리해 버렸다. 이제 조만 간에 온 교회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된서리를 맞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소문과 문제들에 대하여 질문하는 편지를 보냈다. "너희가 쓴 일들에 관하여는"(고전7:1).

 

고린도 교회에 교리와 윤리에 관한 혼돈이 일어났다. 이 혼돈은 결혼의 의미, 우상의 제물, 사도의 권위, 성찬의 문제, 성령의 은사, 부활의 진리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혼돈의 원인은 사랑을 멸시했기 때문이었다.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을 때 결혼은 혼돈을 일으키며, 연약한 자를 사랑하지 않을 때 우상제물은 문젯거리가 되며, 사도를 사랑하지 않을 때 그의 권위를 의심하게 되고, 자기의 배만을 사랑 할 때 성찬은 어지럽혀지며, 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때 은사는 남용되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때, 부활을 부인하게 된다. 사랑의 멸시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말았다. 사랑은 세우는 것인데(고전8:1) 고린도 교회는 성도를 가볍게 다루고, 사도를 우습게 여기고, 주님을 욕되게 함으로써 사랑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는 스스로 교회의 본질을 포기하였다. 한번은 인편으로, 한번은 소문으로, 한번은 서신으로 사도 바울은 겨우내 고린도 교회의 나쁜 소식에 접하면서 몸서리를 쳐야만 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마지막 겨울을 보내는 동안 사랑을 상실한 교회, 사랑을 왜곡시킨 교회, 사랑을 멸시한 교회, 고린도교회에 의하여 끊임없이 심신에 괴롭힘을 당했다. 그 겨울은 어느 겨울보다도 훨씬 몸도 마음도 추웠다. 겨울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길고 긴 편지를 썼다. 사도 바울은 하늘과 바다와 대지가 마주 닿는 에베소의 언덕에 걸터앉아 저편 하늘아래 놓여있는, 바다 건너에 자리 잡은, 다른 땅에 위치한 고린도교회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한없이 애달픈 기도를 드렸다. '사랑에 대하여 알려 주어야지, 사랑을 회복시켜 주어야지, 사랑의 글을 써 보내리라.' 긴 겨울이 지나는 하늘에는 눈부신 햇살이 사랑의 가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고린도 전서 13장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 글이다.

 

고린도 교회의 현재를 살펴보면 매우 비 영적인 상황에 있다. 고린도교회는 변함없이 인간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고 아직도 육신에 속한 어린아이들과 같이 당을 지어 분쟁을 일삼았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을 나누어 놓음으로써 그리스도를 나누어 놓았다(고전1:12). 고린도 교회는 여전히 세속적인 방식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법정에서 투쟁을 벌이고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손해를 보지 않겠다고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법정에 나가 송사를 하였다(고전6:6). 고린도 교회는 계속해서 미신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우상 제물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없었다. 우상제물을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논쟁에 빠져 있었다(고전8:1). 고린도교회는 아직도 물질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먹을 것을 가지고 싸운다. 주의 성찬을 먹을 때 사람들이 서로 먼저 갖다 먹음으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하는 사례가 일어났다(고전11:20-21).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이와 같은 인간적이며, 세속적이며 미신적이며, 물질적인 오류를 극복하도록 고린도 교회에게 영적인 것에 관하여 교훈한다. 교회는 영적인 세계를 사모해야한다. 영적인 세계에 들어와 있는 이는 남이 알 수 없는 것을 알며, 남이 살 수 없는 삶을 살며,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하지만 영적인 세계는 이 정도가 아니다. 영적인 세계는 훨씬 높고 넓다. 영적인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길이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12:31)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랑은 또 다른 어떤 더 큰 은사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모든 은사를 사용하고 적용하는 일에 사랑으로 조율(tuning)되지 않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은사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요 책임으로서의 가장 좋은 길(best way)이 되는 것이다.

 

고린도는 헬라의 고모라 성이라고 불릴 만큼 부패하고 문제가 많은 도시였다. 이곳에서 바울은 1년 6개월 동안 전도한 결과 교회를 세웠다. 바울은 이 교회를 통해 타락한 도시를 구원하려는 큰 꿈을 가졌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로부터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식은 분열과 분쟁이었다. 한마음이 되어 선교에 전력해도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분열이 계속되었다. 바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의 상황에 대해 전해들은 내용을 그대로 말한다.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11절)

 

분쟁과 싸움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여기 분쟁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스키스마"이다. 이 말은 "옷이 찢어진 상태"를 말한다. 찢어진 옷은 입을 수 없다. 찢어진 그물은 고기를 건질 수 없다. 깨진 그릇은 그릇으로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 분쟁은 우리로 하여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분열된 가정, 분열된 교회, 분열된 민족이 그렇다. 그래서 오늘 바울은 권면한다.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10절)

 

분쟁이 없이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같은 말을 해라", "같은 마음을 가져라", "같은 뜻을 품어라", "합하라", 이것은 다 무엇인가?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 되는 곳에 평화가 있다. 하나 되는 곳에 기쁨이 있다. 하나 되는 곳에 희망이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하나가 되고, 선생님과 학생이 하나가 되고, 여당과 야당이 하나가 되는 그런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고린도 교회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지적 우월감(고전1:17-18,20-25; 2:1-5,10-16; 3:18-23).

2. 교회 내 분쟁과 파당 사이의 문제(고전3:3),

3. 심각한 도덕적 성적 부도덕(근친상간) 문제(고전5:1),

4. 신자 사이의 법정 소송 문제(고전6:1-8),

5. 결혼(혼인) 문제(고전7:1),

6.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는 문제(고전8:6)

7. 공중 예배에서 여성들의 부적절한 행동(교회 안에서의 여자의 위치)(고전11:2-16),

8. 주의 만찬을 오용함(고전11:17-21),

9. 영적 은사들, 특히 방언의 은사에 대한 오용과 오해(고전14:1-5).

10. 잘못된 부활 신앙 문제(고전15장).

 

이와 같이 고린도교회는 모든 면에서 당시의 다른 교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영적 상태였음이 분명하다. 당시 고린도 교회가 당면한 영적인 문제는 매우 다양했으며, 또 어떤 것들은 매우 심각하기까지 했다. 성령의 은사(고전12-14장)자체를 제외하고는 고린도전서 1장에서 15장까지 전 방위적으로 드러난 문제들이었다. 바울은 이런 영적 상태의 고린도 교회를 육신에 속한 자로 규정하면서 그들의 신앙 수준이 어린아이 같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3:1-3).

 

이런 상황에서 방언의 문제도 다루어지고 있음을 기억한다면 방언에 관한 정의와 목적에 대한 좀 더 명료한 답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