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견뎌내는삶의 신앙

새벽지기1 2018. 3. 8. 21:47


샬롬! 찬미예수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 고난이라는 것의 공통점은 견디고 인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다림과 인내는 신앙에 있어서 높은 수준에 있는 믿음의 질을 결정한다.

고난을 너무 치열하게 싸워서 이기고 극복하는 것으로만 여기지 말아야 한다.

고난은 그냥 견디는 것이고, 견디는 것은 소망과 관련되어 있고, 믿음과 관련되어 있고, 궁극적으로 구원과 관련된 일이다.

성경은 분명히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야고보서 주제는 보통 '믿음'이라는 한 단어로 집약되는 로마서를 균형 잡아 주는 '실천'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야고보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그 주제는 '인내'.

야고보는 서신의 초두에서 '인내'를 말했고, 마지막에서도 '인내'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1:2-3; 5:7-11).

성도들이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오직 주의 말씀대로 사는 인내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야고보서의 주요 주제인 것이다.

그는 심지어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고 선언했다(5:11).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셨고, 피할 길을 주셨다.

우리 예수님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히12:2).


그가 말한 15절에서의 '지혜''인내할 수 있는 믿음'이다.

야고보는 성도들이 시련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이겨낼 수 있도록 주님의 강림을 바라보는 것이다.

야고보서가 기록된 당시엔 지금과 같은 신앙의 자유가 없었다.

고난과 핍박,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때였다.

심지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선 목숨을 내놔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신앙의 변절자, 세상과 타협하는 자들도 생겨났다.

야고보는 고난당하는 성도를 격려하면서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라고 권면한다.


예수님을 믿고 살아간다는 것 역시 기다림과 인내를 요구한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갑자기 삶에 기적이 일어나거나 축복의 결과물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어도 여전히 내 삶에 고난이 있고 힘든 일이 몰려올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의 때를 기다리고 인내해야 한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인내해야 하지만 여기에 가장 큰 장애물도 있다.

그것은 바로 9절에 나오는 '원망'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원망과 불평의 삶은 미숙한 인큐베이트 신앙에 머무르고 만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으시되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으시고 그저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기다림과 인내의 영성이 있는 사람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다만 고난 중에도 길이 참고 기다린다.

믿음의 선조들이 그러했듯이 우리의 신앙생활도 기도하며 기다리는 인내가 중요하다.

다윗 역시 기다림의 영성을 지녔던 사람이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40:1) 


삶도 이겨내는 것보다 견뎌내야 하는 일들이 훨씬 더 많다.

이 순신 장군은 왜란으로 지쳐있을 때에도 붓을 빨고, 먹을 갈아 난중일기를 기록했고,

후대에 그 일기의 기록을 통해 해전에 유익한 병법서가 되었다.

우리도 힘들고 어려울 때,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며 소망 중에 드리는 기도와 말씀은

다가올 고난에 대처하는 탁월한 병법서가 될 것이다.


어머니의 삶도, 아버지의 삶도 견디는 삶이다.

아버지를 이기는 삶이 아니라 견디는 삶이고, 아버지 또한 그렇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위해 칼바람 속에서도 수많은 인고의 삶으로 묵묵히 버텨온 삶이다.

사지가 절단된 나무도 봄이 되면 연두색 이파리를 올리는 까닭은 모진 겨울을 견딘 덕이다  

 

김영봉 목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우리는 병에 대해서도 '싸워 이길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투병'(鬪病)이라고 표현한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투병 과정 자체가 고통스럽다.

치료 과정을 '전투'가 아니라 '여정'으로 본다면, 질병은 '원수'가 아니라 '친구'가 될 수 있다.

때로는 죽을 때까지 매일 직면해야 하는 질병이 있다.

그럴 경우 원수로 여기기보다는 친구로 여기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롭다 할 수 있다.

원수로 여기면 매일의 삶이 전쟁이 되고, 친구로 여기면 매일의 삶이 고통 중에서도 즐거운 여정이 되기 때문이다.

'싸워야 할 전투'가 아니라 '지나야 할 여정'이라고 생각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 있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여정은 걸어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치료 과정을 여정으로 보면 고통 중에서도 크고 작은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또한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기도 하고, 인생의 신비를 새롭게 경험할 수도 있다


믿음은 소망과 인내와 기다림을 거느리고 구원을 누리게 한다

기다림과 인내는 구원을 현실화하고 열매 맺는 신앙생활에 있어 깊은 영성에 해당한다.

'벼락공부'는 있어도 '벼락 믿음'은 없다.

신앙생활 자체가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기다림과 인내의 영성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주님 오실 때까지 지치지 않고 지켜내야 하는 믿음은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눅18:8)

  


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