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수면(잠) 신학

새벽지기1 2018. 2. 13. 23:08


샬롬! 찬미예수


수면(잠) 신학


밤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밤은 가장 골치 아픈 문제들을 치료해주는 간호사이다.

밤은 잠을 위해 존재하고, 밤은 눈을 감게 함으로써 세상을 잊게 만든다.

수면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가장 평화롭고 평안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경험한다.

수면 시간은 인간의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을 떠나서 잠시 카이로스(Kairos)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수면이란 죽음을 의미하고 죽음을 연습하는 훈련시간이다.

수면은 죽음을 위한 리허설이다. 잠은 사()의 예행연습이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주권자로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감독이시다.

매일 밤무대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특별히 허락하신 것이다.

이 죽음의 시간은 영적인 존재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신앙의 여정이요 천로역정과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 볼 수 있는 아름답고 고귀하고 거룩한 시간이다.

잠자는 시간만이라도 인간은 한계가 있다. 죽음이 있다. 그리고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죽음 너머에는 하늘나라가 있고 영생이 있고 구원이 있다.


수면은 신앙을 훈련시키는 장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청할 때, 우리는 가장 나약한 존재로 변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 무의식과 무기력의 상태의 깊은 심연 속으로 침몰한다. 

잠자는 동안은 가장 위험한 시간이다.

자신을 해치는 원수들이나 강도 도둑들에게 정당방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한 상태가 되고 만다.

 

잠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보약으로써 잠은 순기능이다.

그러나 불면으로써 잠은 재앙이다.

수면은 인간 신체의 면역과 신경, 골격과 근육체계를 회복시켜 주기 위하여 도움을 주는 신진대사의 상태이다.

수면을 단순히 몸을 회복시키는 시간으로만 보면 곤란하다.

잠을 자면서 꿈을 꾼다. 잠의 세계는 탐험해야만 하는 신대륙이다  


우리 인간은 피조물이다. 시간도 수면도 피조적인 것이다.

수면은 하나님이 아니고 창조자가 아니다. 수면을 취하도록 허락하는 주인은 따로 있다.

잠은 우리에게 무언가 깊은 진리를 전해준다. 우리는 매일 밤마다 그 진리와 함께 수면을 취하며 잠을 자고 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라!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4:8).

이와 같이 잠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성경에는 잠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2:21).   

야곱은 하늘이 열리고 사다리가 내려와 천사들이 왕래하는 꿈을 꾸었다(28:10-19).  

"요셉이 잠을 자며 꿈을 꾸었다"(37:5-11).

하나님이 주신 그의 꿈은 한 국가의 운명 전체가 생존할 수 있었다  

다니엘의 꿈 스토리에서, 바벨로니아 포로 신세가 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해주는 사건을 통해 

장차 있게 될 인류의 역사와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상징한다.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힘을 소유한 삼손이 잠을 잘 때에

연약하고 나약한 여인 들리라의 손아귀에서 머리를 자르게 되어

결국은 눈을 잃고 죽게 되는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된다.



마태복음 25:1-13절에서 결혼식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온다.

똑 같이 잠을 자고 똑 같이 등불을 준비했으나 기름을 준비했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정작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다섯 처녀의 결말은 종말을 예고하는 예수 재림의 시간을 암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은 잠을 자는 동안 하나님을 만나보는 영적인 사건들이 벌어진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잠자는 동안 우리를 만나기 위하여 항상 깨어 있으시는 분이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면,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121:3-6)라고 고백한다.

 

(수면)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신성한 선물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수면을 신성하게 만드셔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적으로

진정한 쉼과 안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신다.

폭풍우 속에서 조차도 배에서 평안히 주무셨던 주님은 자연을 통제하시고 통치하시는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서 오직 세상 근심 걱정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눈을 감는 그 순간부터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잊게 하시고 하늘의 것을 바라보도록

무의식 상태로, 혹은 꿈을 꾸면서, 비전을 내다보도록

인간에게 적절한 수면 시간을 영적인 카이로스 시간으로 배정하신 것이다

    

예수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그것을 수용하고 잠을 잤다.

그러나 아주 알맞은 시간에 더 위대한 것을 얻기 위하여 그 분은 스스로 잠자는 것을 부정하셨다.

예수가 자기에게 절박한 문제가 닥쳐왔을 때,

스스로 자연스런 인간의 본능, 잠의 욕망을, 수면을 포기한 두 가지 분명한 예가 있다.

첫째는 사도들, 제자들을 선택하려고 했을 때이다.

둘째, 예수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할 시간이 다가와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도록 몸부림치며 기도했다.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나온 수면신학은 두 가지다.

첫째, 그대의 잠을 신성하게 만들라. 둘째, 사랑이 요구할 때, 그대의 잠을 포기하라.

하나님의 선물인 잠을 받고 즐겁게 자야 할 때가 있고

더 중요한 일, 소외된 이웃들을 돌보는 일을 위하여 잠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믿음으로 걸어가는 일이란, 성도들이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한다.

꼭 필요할 때, 잠을 포기하는 성도와 잠을 수용하는 성도로서의 신앙이다  

그러므로 수면을 신성하게 만들라. 자신의 수면을 거룩하게 만들라. 

 

예수도 잠을 잤다는 것은 일상생활 중에서 수면이란 신성한 것을 암시해준다.

여덟 시간의 잠이란 긴 시간이며 신성한 시간이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127:2)

영어 성경으로는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자는 동안에도 복을 내리신다."라고 해석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표현으로 우리에게 잠을 주신다.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꿀잠을 잘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