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마이클호튼

마이클 호튼, 『개혁주의 예배론』,

새벽지기1 2018. 1. 16. 08:25


20세기 중반의 추리 소설 작가 도로시 세어즈는 이 책에서 전제로 삼는 개념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공인된 기독교가 근래에 와서 ‘언론으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는 설교자가 흔히들 ‘따분한 교의’로 부르는 교리를 지나치게 고집해서 사람들이 교회를 찾지 않는다고 늘 확신한다. 사실은 정반대다. 기독교 신앙은 사람의 상상력에 항상 큰 충격을 주는 가장 흥미진진한 드라마인데, 교리는 그 드라마와 똑같다.”

 

이 책은 우리가 예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성경적 토대를 받아들이고 발전시키기 위한 시도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가 늘 해 오던 방식이다’라는 식의 생각이나 ‘새 것이 더 낫다’는 식의 생각으로 자기 입장을 단순하게 변호할 수 없다.

 

이 책이 추구하는 목표는 우리가 성경에서 예증되는 광경을 목격할 뿐 아니라 말씀과 성령이 실제로 우리의 공동 예배 안에 끌어들이시는 구원 드라마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다.

 

새로운 찬송가를 창작하는 일이나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더욱 충실한 예전을 고안하는 일을 포함하는 모든 위대한 예배 혁신 운동은 교회 안에서 선포와 가르침이 크게 개혁되는 바로 그 시기에 연이어 나타났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자신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이해할 때, 하나님의 백성은 마음뿐 아니라 생각도 변화된다.

 

이런 위대한 시기는 얼핏 보기에 모순된다고 생각되는 두 가지 일을 항상 동반하는데, 그중 하나는 세상과 세속적인 교회와의 커다란 충돌이며 다른 하나는 잊어버렸던 진리와 관행이 새로운 환경에 대단히 적절하다는 새로워진 인식이다.

 

예배를 개혁하는 두드러진 사건은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으로 인해 발생한다. 사람의 방법으로 고안된 교리와 관행 탓에 복음이 무색해진 현실에서, 개신교 종교개혁가들은 능력이 복음 선포에 있음을 알았다. 다시 말해 단순히 설교만이 아니라 복음이 선포되는 예배 의식 전체에 능력이 있음을 알았다.

 

개신교 종교개혁가들은 예배 의식이 일차적으로 사람의 행동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동을 중심에 둔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나님은 예배 받으시는 대상으로서뿐 아니라 예배 주체로서도 중요한 분으로서, 나그네와 타국인을 구속된 자기 백성으로 매주 회복시키시는 연기자다.

 

존 칼빈은 창조와 구속을 말할 때처럼 예배도 지켜보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이 행동하기 위해 내려오시는 ‘경이로운 극장’ 이라고 부른다. 성령은 친히 정하신 방편을 통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예배 의식은 예수님과 예수님이 베푸시는 온갖 유익이 과거에 ‘백성이 아니던’ 사람들, 되는 대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은혜의 극장이 된다.

 

도로시 세어즈는 말한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예수님께 순응시키는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드라마는 바로 교리인데, 교리는 아름다운 말도 아니고, 위안을 주는 감정도 아니며, 자비에 대한 모호한 열망도 아니고, 죽은 이후에 좋은 무엇도 아닌, 세상을 만드신 그 하나님이 세상에서 사셨고 무덤을 거쳐 죽음의 문을 통과하셨다는, 깜짝 놀라게 만드는 주장이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사람들에게 그 드라마를 보여 주라.”

- 「서론」, pp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