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마이클호튼

설교는 누구나 참여하는 주간 토크쑈가 아니다 / 마이클 호튼

새벽지기1 2018. 1. 18. 12:57


설교는 단순히 목회자가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므로 보통의 담화가 아니다. 설교는 새로운 백성을 만들어 내는 그런 종류의 담화다. 설교는 만남인데, 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은 재판장의 자리에 친히 앉으셔서 완벽한 공의의 준거에 따라 죄인인 우리를 심문하시며, 그런 다음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우신 분이 되면서도 동시에 불경건한 자들을 의롭다 하시는 분이 되는 길을 모색하신다.

 

이 모든 일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발생한다. 이 모든 일은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 안에 작용하며 성례를 통해 우리에게 가시적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도록 인가받은 사람이 말씀을 선포한다고 말한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롬10:15).

 

설교는 사람들이 누구나 참여해서 자신의 종교 체험과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주간 토크쇼가 아니다. 은사나 감동적인 간증, 혹은 두드러진 경영 기술과 사람을 다루는 솜씨 때문에 사람이 이런 재능으로 하나님을 공식 대변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니다.

 

얼 라우텐슐라거의 말처럼 “신학 없는 목회자는 물리학 없는 기술자나 해부학 없는 의사와 같다. 그런 목회자는 여러분을 죽일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종류의 위험에서 자기 양 무리를 보호하기 위해 교회에 사역자를 세우신다. 하나님은 심지어 안수받은 목회자를 세우실 때도 복음 전달 체계를 보호하기 위해 애쓰신다.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복음을 보전하실 뿐 아니라 전달되는 방식에 있어서도 복음이 여전히 좋은 소식이 되게끔 하신다. 믿음이 칭의의 유일한 방편인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 귀는 수신의 기관이지 달성의 기관이 아니다.

 

설교가 필요한 것은 거기에 불가사의한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죄인들의 칭의와 성화를 위해 정하신 방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구원이 오로지 은혜로 말미암도록 하고 자신이 모든 영광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기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기로 뜻하신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죄인들을 찾으시고 죄인들의 구원을 이루신다고 말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우리의 노력이 성공을 거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 마이클 호튼, 『개혁주의 예배론』, pp 5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