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마이클호튼

복음주의자들은 권력과 영광을 추구하느라 초월성을 잃어버렸다 / 마이클 호튼

새벽지기1 2018. 1. 12. 07:59


현대의 복음주의자들이 낮아지는 일을 거부하면 할수록, 거부하는 그 정도만큼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엄위와 거룩하심과 주권을 깨닫고서 느꼈던 해방감과 즐거움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자신의 손아귀에 권력이 들어오기를 추구하고 자신들의 찬란함을 추구하느라고, 적절한 공식을 통해 자신들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자기들 마음 속의 신을 추구하느라고 초월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스라엘 자손은 거듭해서 그들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길에서, 그들은 시편 121편을 노래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회복의 비전을 약속하신다.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 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을 바라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사17:7~8). 현재 우리가 마치 이스라엘 자손처럼, 우리의 조건에서 우리와 만나주는 신,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 어떻게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지를 보여 주고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며 우리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현대의 교회 성장의 신을 얼마나 고집스럽게 섬기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신은 매우 ‘실질적이며’ 매우 ‘적절하다.’ 그 신은 거룩하지도 않고, 그의 창조 세계와 분리되어 있지도 않으며,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정원에서 나와 함께 거니시고 말씀하시는” 그런 하나님이다. 얼마나 계속해서 우리는 우리 손으로 만든 제단에-그 좋은 머리에서 만들어 낸 확실히 입증된 테크닉들과 프로그램들과 예배 스타일에-우리의 눈을 고정시키는 훈련을 계속하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심리학과 사회학과 비즈니스와 마케팅 전략들과 정치적 의사일정들과 이데올로기라는 현대의 제단들인 이 ‘산들(high places)’에서 온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얼마나 많은 크리스천이 자신들의 부흥과 구원에 대한 소망을 위해 갈보리가 아니라 캐피털 힐(미 국회의사당이 있는 언덕을 가리킨다)을 바라보고 있는가?

 

언제 우리는 그런 언덕과 산에서 눈을 돌려 하늘을 쳐다볼 것인가? 우리의 봉사와 예배는 하나님 중심적인가, 아니면 인간 중심적인가? 우리는 우리의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훈련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성공과 쾌락과 자기 성취와 같은 지상적인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는 자아 성취라는 높은 언덕들과 산 위를 바라보도록 우리를 격려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의 육체 대신에 하나님에게 우리의 신뢰를 두도록 인도해 주고 있는가? 그 예배에는 보좌에 좌정하신 천지의 주재의 거룩하심과 위엄이 칭송되면서 경탄과 존경과 초월에 대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세상이 엉거솔의 말처럼 “우리가 헛되이 그 높은 곳들 너머를 바라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마이클 호튼, 『세상의 포로 된 교회』, pp 177-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