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마이클호튼

문화적 승리가 아닌 십자가가 적대적인 우리를 하나로 묶어 준다/ 마이클 호튼

새벽지기1 2018. 1. 9. 08:10


복음주의자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로울 수 있는가(복음)에 대해서보다는 시민 사회적인 의와 관련된 일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시민 사회적인 의가 우리의 담론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보스턴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인 피터 버거(Peter Berger)는 “배교의 본질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구원을 ‘믿음으로 들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가 아니라 바울이 말하고 있는 바 ‘율법의 행위’ 에서 찾는 것입니다. 배교의 구체적인 내용들, ‘공로적 의’의 내용들은 시대마다 다양합니다.”

 

“민주주의든지 자본주의든지, 중산층 문화에 속하는 특정한 가정 문화든지 간에 기독교적 생활과 동일시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미국식 생활 방식에 대한 옹호도, ‘사회주의 건설’ 도, 심지어 ‘정의 사회 구현’까지도, 대안적인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죄에 의해 손상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다른 복음들’ 가운데 있는 ‘공로적 의’는 정확히 만약 우리가 이런 일을 행하기만 하거나 저런 일을 삼가기만 한다면 구원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을 것이라는 암시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했던 바울의 책망이 우리에게 뚜렷하게 드러나야 한다. 복음에다가, 유대적 관습들과 의식 같은 것들을 덧붙임으로써 그리고 그런 것들을 고수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기독교적 정체성을 삼음으로써, 갈라디아교인들은 사실상 다른 복음을 수용했던 것이다. 그 다른 복음은 전혀 복음이 아니다.

 

우리는 복음을 보수적 복음주의자들로서 특정한 정치적 제휴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갈라디아교인들을 따르고 있으며, 갈라디아교회에서 나타났었듯이,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나는 어떻게 참된 크리스천이 민주당원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고 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오직 믿음을 통한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칭의보다는 문화적 세뇌 프로그램에 의해 의롭다고 인정받고 구원받는 일을 추구하고 있었다. ‘오직 믿음’ 은 공로적 의와 자기 의로 이루어진 다른 복음들을 파괴시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직 믿음’ 은 문화적이며 정치적이며 사회 경제적인 요인들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우리 주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 근거한 복음 공동체를 만들어 낸다.

 

오직 믿음은 또한 대속의 바다 가운데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악질적인 죄인들의 죄책과 정죄도 묻어 버린다. 복음은 포르노 중독자, 아동 추행자, 동성연애자, 마약 딜러, 심지어, 낙태 찬성론자들까지도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공동 상속자가 되도록 초청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우리의 사악함에서부터 돌이키고, 우리 자신의 의가 아무리 최선의 것이라 할지라도 ‘더러운 걸레 조각’임을 인정하고 우리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의 자비의 손에 의탁할 때, 우리는 우리의 적이었던 사람들을 십자가에서 함께 만나게 된다.

 

문화적 승리가 아닌 십자가가 마침내 서로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건설하시는 일에 대한 비전이다. 이 일은 복음의 선포들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전쟁의 수사어와 행동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 마이클 호튼, 『세상의 포로 된 교회』, pp 155-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