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마이클호튼

교육도, 예술도, 과학도, 구제도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호튼

새벽지기1 2017. 12. 28. 06:58


교육과 도덕성이 꼭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나치들도 매우 잘 교육 받았던, ‘서구 문화’의 문화적 보존자들이었던 것이다. 정부가 사람을 선하게 만들 수 없듯이, 교육은, 심지어 기독교 교육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을 선하게 만들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천들은 교육과 자기 자녀들의 교육을 열심히 추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육이 나쁜 자식들을 선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적어도 무지한 자가 좀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와 주기 때문이다. 교육이 사람을 구속(救贖)해 줄 수 없다는 말이 곧 교육이 사람의 눈을 뜨게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예술은 문화를 건설하도록 하나님이 주선 필수불가결한 선물이다. 그리고 예술은 타락의 산물이 아니라 창조의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은 정부나 좋은 도덕성이나 좋은 교육에 의해 구원받을 수 없듯이, 좋은 예술에 의해서도 구원받을 수 없다.

예술의 목적은 사회를 개선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며, 개인을 개선시키는 데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나치들은 병리 현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예술은 그 실용주의적인 용도를 위해, 도덕적 영향을 끼치기 위해 혹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은 세뇌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술이 좀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가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는 어느 영역에 대해서도 마찬 가지다.

 

그 고유한 영역(자연 세계) 가운데서의 과학은 문화 가운데서 매우 유용한 목적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과학이 그 자체의 경계를 넘어 영적인 실재들을 설명하고 인생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들 때, 과학은 두뇌 과학의 선구자인 존 에클스 경(Sir John Eccles)이 관찰했듯이, ‘하나의 미신’ 이 되어 버린다. 동시에 성경이 그 점에 대해 전적으로 함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들이 지질학자들에게 지구의 나이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 역시도 목사로서의 영역의 한계를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홈리스(homeless, 부랑자들)를 도와 주고, 낙태하지 않도록 여인에게 상담 해주는 일은, 특히 그들이 크리스천일 경우, 우리 크리스천이 의당 개입해야 할 활동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활동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활동은 아니다. 그런 활동이 사회가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줄 수 있음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말씀과 성령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은 복음 자체다. 크리스천들은 두 왕국을 분명하게 구별하면서도 두 왕국 모두를 건설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 마이클 호튼, 『세상의 포로 된 교회』, pp 133-135

(청교도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