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마이클호튼

세속주의는 세상 뿐 아니라 교회까지도 포획했다 / 마이클 호튼

새벽지기1 2017. 12. 20. 07:59


만약 교회가 하나님 중심적인 방식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결단코 세상이 아니다. “아, 예, 그것은 그저 신학일 뿐이구요. 나는 그냥 예수님만 사랑하기를 원해요" 라는 말은 오늘날의 교회 가운데서 아주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신조들과 고백들과 일반 교리들을 상당히 비실제적인 범주로 치부해 버리고 포기하면서, 크리스천들은 비기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큰 그림’을 맞추는 작은 그림 조각들을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생각은 더 이상 하나님의 성품과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 섭리, 기적, 죄와 구속, 역사의 의미, 교회의 맥락에 기초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사회에서 이런 신학적 추구를 대신하게 되었는가? 많은 사회학자들과 역사가들이 지적하고 있다시피, 사물들을 이름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것은 근대성(모더니티)과 이제는 후기 현대성(포스트모더니티)의 세력들이다. 죄는 기능 장애 혹은 자긍심의 결여로 이해되고 있다.

 

왜냐하면 심리 치료의 혁명이 이제는 그와 같은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명령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한 가지 특정한 시장을 타켓(target)으로 삼도록 설계된 ‘사용자 편의를 위주로 하는’ 기업이다. 왜냐하면 경영 혁명이 그와 같은 것들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문화 전쟁은 이미 일어나 있었으며 ...... 그리고 승리했다. 세속주의가 세상을 포획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까지도-심지어 복음주의자들까지도-포획했다.

 

세속주의는 교회로부터 기독교 신학을 무장해제시켜 버림으로써 승리했으며, 세대마다 전해 내려왔던 믿음을 개인의 체험으로 바꾸어 버림으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초자연주의를 근대에 발명된 어떤 기계와 같은 일종의 도덕 체계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승리했다. 올바른 버튼들을 누르기만 한다면, 심지어 하나님까지라도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중심적이며 세속화된 인식틀을 채택하지 않고서는 도덕성을 논할 수조차 없다. 교회는 그 자체가 그 중심부에서 세속적인 전제들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도덕적 혼란으로부터 ‘미국을 구할 수’ 없다. 상대주의와 공리주의적 실용주의를 절대적 도덕들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삼는 것은 어떤 상대주의자가 절대적인 진술들을 가지고서 상대주의의 참됨을 입증하려고한 것 만큼이나 어리석고 자기 모순적인 것이다.

 

세속주의가 우리의 눈을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 및 종교개혁과 부홍, 선포와 회심에 고정시키는 대신에, 우리 자신과 우리 나라와 우리 세계와 우리의 시간과 공간과 우리의 순간에 고정시키고 있음이 다른 모든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각 지역의 크리스천 서점들과 강단들과 주일학교 커리큘렴과 방송과 종교적 담화에도 확연히 드러난다.

 

- 마이클 호튼, 『세상의 포로된 교회』, pp 103-105

(청교도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