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순절묵상

사순절 묵상(18)

새벽지기1 2017. 4. 4. 07:11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84:10)

 

다른 시편도 그렇지만 특별히 시편 84편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진수를 더 절절하게 보여준다.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여러 개로 나온다. 만군의 여호와,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등이다. 그의 간절한 심정이 담겨 있다. 그 하나님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단어도 여럿이다. 주의 장막, 여호와의 궁정, 주의 제단, 주의 집, 주의 궁정 등이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여러 문학적 수사 기법으로 묘사했다. 시인의 마음이 위 10절에 잘 나타난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주의 궁정에서 지낸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지낸다는 뜻은 아니다. 고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으로 여긴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을 거기에 제한시키지 않았다는 것도 분명하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서의 징표일 뿐이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 모든 것을 거주지로 삼는다. 고대 유대들의 역사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구심점으로 삼으려는 전통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전통이 각축을 벌였다. 눈에 보이는 지역과 건물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성전주의를 무조건 배격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종교 이데올로기로 작동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 신앙에도 큰 도움이 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위 시편기자가 말하는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은 훨씬 근원적인 것을 가리킨다. 주의 궁정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상징한다. 하나님 경험이다. 하나님 경험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다. 세상에서의 천 날도 그 한 날보다 못하다. 절대적인 경험이고, 거룩한 두려움이다. 그래서 우리의 언어로 표상할 수 없다. 성서 인물들은 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엘리야, 이사야 등이 그렇다. 사도들과 기독교 역사의 위대한 스승들도 다 그렇다. 예수가 경험한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은 그 모든 것의 근거다. 그는 하나님을 본 자이다. 그가 곧 주의 궁정이다.

 

언젠가 어떤 분과의 이야기 중에 이런 고백을 들었다. 하나님, 그의 통치, 그의 생명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라도 느끼는 순간에는 그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세상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주의 궁정을 말하는 시인은 실제로 하나님을 경험한 것일까? 자신의 간절한 기대를 그렇게 표현한 것뿐일까? 이 둘이 그렇게 딱 부러지게 구분되는 건 아니다. 하나님 경험, 또는 절대 생명의 경험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은 못 보고 등만 볼 수 있었다는 게 이런 의미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또는 하나님의 존재 신비, 그의 약속들을 어느 순간에 깊이 있게 경험한다. 뭔가 세상이 밝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경험은 어느 순간에 어둠 속으로 가라앉기도 한다. 막막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다. 한 번이라도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그 경험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그런 기대를 안고 기도하게 된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에 대한 경험, 또는 그것에 대한 간절한 기대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하나님 경험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다. 비유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여기 사과가 있다. 사과경험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 맛있게 먹는 것으로 사과경험이 다 끝나는 게 아니다. 사과의 세계로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사과가 이렇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데서부터 이런 일이 시작된다. 사과를 둘러싼 물리 현상을 아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사과를 단순히 우리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물로만 대하는 게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일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을 예수 경험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게 일단 중요하다. 그 사실이 성육신이다. 그에게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충분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들은 풍월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알아야 한다. 여기에는 죄, 죽음, 세상, 역사, 문화, 생명 등등에 대한 인식도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단지 교리적인 정보로 아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와 존재론적으로 일치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해방과 자유, 즉 구원을 경험한다. 이것이 곧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다. 이 날의 기쁨과 환희는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의 천 날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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