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설교에 대한 고민

새벽지기1 2016. 7. 21. 07:57


나는 설교 때문에 힘겨워하거나 고민한 적이 거의 없었다. 전도사 시절부터 첫 목회를 사임하는 날까지 설교 준비는 항상 즐거움이었고 행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뭇 다르다. 설교를 준비하는 것도 힘들뿐 아니라 고민도 참 많이 한다. 설교를 하고 난 이후의 만족도도 예전만 못하다. 예전에는 설교할 때 대부분 스스로 은혜를 받았고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도무지 만족스럽지가 않다.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가만히 돌아보니 세월과 함께 설교의 무게가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전도사가 되어 처음 설교를 할 때에는 정말 설교가 재미있었고 쉬웠다. 설교 준비도 재미있었고 설교하는 것도 즐거웠다. 단독 목회를 시작하고 7년여의 세월이 흐를 때까지만 해도, 아니 건강 때문에 첫 목회를 사임할 때까지도 설교 준비가 힘들다는 생각을 거의 해보지 않았다. 설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선후배 목사님들의 이야기가 매우 낯설게 들렸었다. 설교가 왜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설교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든다. 설교를 준비하는 것도 상당히 벅차고 힘겹다. 젊어서보다 체력이 약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설교한다는 것 자체가 내 능력 밖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과연 설교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고민을 하기도 한다.

 

근원적인 고민은 차치하더라도 현실적인 고민이 있다. 설교 내용과 청중과의 교감 문제다. 설교는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에 정직해야 한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시는 바를 가장 정직하게 전하는 것이 설교의 으뜸가는 책무다. 말씀의 하수인 노릇을 하지 않는 설교는 설교일 수 없다. 그런데 말이 쉽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정직하게 설교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본디 말씀의 깊이와 넓이라는 게 끝이 없는 것이고, 어느 누구도 그 깊이와 넓이를 다 탐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설교의 내용뿐 아니다. 설교를 하는 행위도 갈수록 어렵게만 느껴진다. 차분하고 깊이있게 설교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데 자칫하면 설교의 역동성이 떨어질 수 있다. 비현실적인 거대담론으로 떨어져버리기도 쉽다. 반대로 청중과의 소통을 고려하다 보면 말씀의 깊이를 파고들기가 어려울 수 있다. 메시지의 중심보다는 신앙생활을 격려하고 강화하는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하여, 나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붙잡으려 한다. 역량은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말씀의 깊이를 천착하고 메시지의 중심을 정직하게 전하려 할뿐 아니라 청중과의 역동적인 교감 또한 극대화하려 한다. 예배하는 성도들을 졸음으로 초청하는 설교자, 무한한 인내를 강요하는 설교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하나님과 성도 모두에게 무례한 설교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다 견인하기가 힘에 겹다. 말씀의 깊이를 천착하는 일 자체만으로도 사실은 버겁다. 나는 요즘 설교자의 책무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깊이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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