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무얼 위해 주어진 것일까요? 두 말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은 삶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믿음생활을 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생활하라’고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은총을 받은 자들이 기억해야 할 기본 원칙입니다. 그리고 이 기본 원칙에 터하여 생각해 보면 믿음이 생활을 위해 동원되어야지 생활이 믿음을 위해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삶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 또한 이 기본 원칙을 망각한 채 살다보니 ‘믿음생활’에만 주력할 뿐 ‘믿음으로 생활하는 일’은 소홀합니다.
물론 믿음생활 자체도 쉽거나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믿음으로 생활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믿음생활에 투입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여러 가지 성경 공부에도 참여하고, 봉사하는 일에도 참여해야 하는 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믿음생활이 믿음으로 생활하기 위한 중요한 토대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하지만 믿음생활 자체가 믿음의 궁극적인 목표일 수 없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믿음생활이 중요한 이유는 믿음으로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고, 믿음생활의 토대가 없이는 믿음으로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봅시다. 만일 믿음생활이 믿음으로 생활하는 것을 뒷받침 해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믿음생활에 에너지와 시간을 빼앗긴 나머지 믿음으로 생활하는 것에 지장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믿음생활을 하기에도 헉헉거려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믿음생활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그런 믿음생활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믿음생활에 삶의 에너지를 쏟아 붇는 것은 결코 잘 하는 일일 수 없습니다. 믿음생활은 오직 믿음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에너지 충전소일 때에만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선한 것이라도 ‘과하면 해가 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비타민도 과하면 해가 되고, 운동도 과하면 해가 되고, 음식도 과하면 해가 되고, 칭찬도 과하면 해가 됩니다. 믿음생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야 백번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도 과하면 믿음으로 생활하는데 해가 됩니다. 믿음생활이 삶을 구원하기보다는 오히려 삶을 갉아먹는 또 하나의 소외 현상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안에는 지금 믿음생활의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성실한 믿음생활이 심각할 정도로 해체되어 가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믿음생활의 과부하 현상이 여전합니다. 냉소적인 비판의 눈을 가진 자들은 교회의 주변을 맴돌며 믿음생활 자체를 비웃고 있고, 무지한 믿음 지상주의자들은 믿음생활에 삶과 에너지를 탕진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믿음으로 사는 일이 교회생활로 대체되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도 교회생활만을 독려할 뿐 신앙으로 생활하는 것은 강조하지 않고, 성도들도 신앙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제자도는 외면한 채 교회생활로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생활의 해체 · 믿음생활의 과부하 · 교회생활로의 대체, 이 세 가지는 믿음이 주어진 뜻과 어긋나는 믿음의 왜곡이고 변질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믿음은 삶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믿음생활이라는 토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믿음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믿음생활을 절제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단순한 진실이지만 지금의 한국교회가 꼭 기억해야 할 믿음의 기본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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