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진리를 갈망하는 인간, 그러나

새벽지기1 2016. 7. 14. 07:32


인간은 과연 진리를 갈망하는 존재일까? 그렇다. 모든 인간은 진리를 갈망한다. 물음을 보면 안다. 모든 인간은 묻는다. 매 순간 묻는다. 생각하는 것은 곧 묻는 것이고, 묻는 것만이 진실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음은 인간의 특권이며 동시에 의무다. 인간은 물을 때에만 비로소 인간이다. 인간이 묻는 존재라는 건 일차적으로 인간이 미완의 존재, 무지의 존재라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앎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 앎을 갈망하는 존재라는 더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인간은 앎을 추구하기에 무지를 안다. 또 무지를 알기에 앎을 추구한다. 앎과 무지는 정반대가 아니다. 무지는 앎의 이면이고, 앎은 무지의 이면이다. 그리고 앎이 추적하는 최후의 대상은 진리이다. 인간은 정녕 진리를 갈망하는 존재다. 소크라테스나 싯다르타를 보라. 그들은 순전하게 진리를 탐했다. 삶이 온통 진리 찾기였다. 그들이 비록 진리의 그림자를 발견하는데 그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진리를 갈망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인간이 과연 진리를 갈망하는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은 진리를 갈망하지 않는다. 진리를 갈망할 만큼 순수하지도 않거니와 진리를 탐할 만큼 여유도 없다. 우리네 삶이 지금처럼 화려하고 풍부하지 않았을 때에는 진리에 대한 영혼의 목마름이 조금은 있었다. 삶이 보잘 것 없었기에 삶을 관통하는 진리에 눈길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삶은 다르다. 오감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색상과 디자인이 멋들어지게 결합된 데다가 첨단 기술이 탑재된 상품들이 거리마다 가득하고, 현란한 영상과 톡톡 튀는 볼거리들이 가득한 우리네 삶은 정말 탐할 것들로 넘친다. 그리고 탐할 것들에 둘러싸인 우리는 지금 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채 욕망을 자극하는 자, 욕망을 제조하는 자, 욕망을 소비하는 자, 욕망을 탐하는 자로 살고 있다.


그뿐 아니다. 우리는 이미 진리의 비실용성에 눈을 떠버렸다. 과학, 기술, 정보, 능력, 인맥이 삶을 멋지고 풍요롭게 만들지 진리가 도시의 삶을 건설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인간은 진실로 욕망을 갈망할 뿐 진리를 갈망하지는 않는다. 성경도 같은 사실을 말한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외면하는 존재였지 진리를 탐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을 보라. 하나님을 찾다가 만난 자가 있는가?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여러 사사들과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찾아 나섰는가? 열두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 나섰지 그들이 하나님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진리를 갈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진리에 대한 갈망을 현실의 영광과 승리를 탐하는 욕망으로 치환해버린 존재다. 그렇다. 인간은 눈앞의 욕망을 위해 진리에의 근본적 갈망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진리를 욕망의 도구로 만들어버리기도 하는 참으로 영악한 존재다. 그리스도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도 영악한 존재이기는 매양 한 가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욕망의 도구로 작동시키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이 진실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좋은 말씀 > -목회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이 여물어 가는 길  (0) 2016.07.16
나이를 먹어가는 것인가?  (0) 2016.07.15
삶을 욕망한다  (0) 2016.07.13
예배를 찾아서  (0) 2016.07.12
동행  (0) 2016.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