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생각이 여물어 가는 길

새벽지기1 2016. 7. 16. 09:58


내 경험에 의하면 생각이 여물어 가는 길은 생각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 생각만 하고 있으면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같은 생각만 맴돌 때가 많다. 그런데 글쓰기를 하면 생각이 그 자리에서 맴돌지 않는다. 생각의 줄기가 잡히고 다듬어지며 정돈될 뿐만 아니라 생각이 점차 여물어가는 것을 발견한다. 글을 쓰다 보면 쓰기 전에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생각지 못한 생각이 글을 타고 흘러나오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앞선 글 <나이를 먹어가는 것인가?>도 그랬다. 글을 쓰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이 선명하지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예전과 좀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고, 이러저런 느낌들이 뿌옇게 뒤섞여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막연했던 느낌들이 정돈되었고, 내가 세상일들을 시시껄렁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 보다 분명하게 인식되었다. 또 그런 증상이 나이를 먹어가는 징조는 아닌지 묻게 했다. 만일 내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인식과 물음을 갖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글을 썼다고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글을 썼기 때문에 그런 인식을 할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 생각이 글을 낳기도 하지만 글이 생각을 낳기도 한다. 생각과 글은 어느 것이 먼저랄 수가 없다.

 

글이 낳은 생각은 글과 함께 끝나지 않는다. 글을 쓴 이후에도 생각은 계속 자기의 길을 간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인가?>를 쓰고 나서도 글이 낳은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생각은 계속 물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의 문을 닫고 사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아니라는 것, 삶에 대한 감각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깊어지고 예민해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계속 물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새로운 지평을 만났다. 내가 세상일에 대해 무관심하게 된 것이 단지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 지난 날 나의 몸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간경화로 목회 현장을 떠나 오직 몸 살리기에 전념했던 6년의 세월, 그 6년의 세월이 세상일들에 대한 나의 지각과 관심을 점차 닫게 만들었다는 새로운 지평이. 아, 그랬다. 그 6년 동안 나는 의도적으로 몸 살리기와 관련이 없는 일,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일은 최대한 멀리 했다. 아예 눈을 감으려 했고, 귀를 막으려 했다. 눈을 감고, 귀를 막는 것이 몸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그렇게 하려 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온 6년의 세월이 어느덧 몸에 익숙해진 탓에 뉴스를 듣지 않아도 세상이 궁금하지 않고, TV를 보지 않아도 TV 속 세상이 아쉽지 않게 된 것이라는 새로운 지평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문제의 성격이 드러난 것 같았다. 물음은 절로 몸을 빼고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다짐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지나온 6년의 습관을 떨쳐내고 세상에 대한 관심의 문을 다시금 활짝 열어젖히라는. 그렇다. 이 마음의 다짐은 글쓰기가 준 고마운 선물이다. 이번뿐 아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생각지 못한 선물을 많이 받았다. 내가 일필휘지의 재주를 타고 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쭙잖은 글쓰기를 계속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며, 글쓰기가 생각을 여물게 하는 최선의 길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파스칼이 말한 대로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 하지만 생각하는 갈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또한 생각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일에 가장 게으르다. 하여, 사람은 대부분 글쓰기를 힘겨워한다. 할 수만 있으면 회피하려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이고, 생각하는 갈대는 글쓰기를 통해 여물어 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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