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몸의 중심

새벽지기1 2016. 7. 23. 10:24


나는 지난 주일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명제를 깊이 경험했다. 주일 오후에 소중한 삶을 나누어주신 한성수 교장선생님(용마초교)을 통해서였다. 나는 그에게 삶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기꺼이 응하여 말씀샘교회의 주일 오후 강단에 섰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물음을 던졌다. ‘몸의 중심이 어디라고 생각하느냐?’고. 몸의 중심? 순간 생각했다. 막 생각이 떠돌고 있는데 그는 이내 곧 말했다. ‘몸의 중심은 심장도 아니고, 머리도 아니고, 손이나 다리도 아니고, 몸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라고. 그날 나는 발의 뼈가 하나 부러져 목발을 짚고 힘들게 설교하였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몸의 중심은 몸의 가장 약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하면서 그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으로 기막힌 통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랜 세월 간 때문에 고생하면서 내 몸의 중심이 간이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더 절실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으나 그 말 한 마디가 내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진실로 그랬다. 나는 적지 않은 세월을 자고 일어나는 것부터 음식 먹는 것과 생활하는 것까지 항상 간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무리 마음이 원하는 것이라 해도 간이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었고,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간에 무리가 가는 것이면 취할 수가 없었다. 간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무염식을 했던 적도 있고, 나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나의 간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오른쪽 발 뼈가 부러진 지금도 그렇다. 때로는 목발을 짚고, 때로는 왼쪽 발에 의지해 콩콩 뛰고 있다. 때로는 앉아서 움직이기도 한다. 모든 신경이 온통 상처 난 발에 집중되어 있다. 다친 발 뼈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 온 몸이 동원되고 있다. 그렇다. 지금 내 몸의 중심은 누가 뭐라 해도 오른쪽 발이다. 그런데 나는 정작 몸의 중심이 몸의 아픈 곳, 연약한 곳이라는 통찰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픈 곳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면서도 그 사태를 정확하게 규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몸의 중심은 몸의 가장 아픈 곳’이라는 한성수 교장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인식의 지평이 활짝 열리는 것을 경험했다. ‘몸의 중심’이라는 명제와 사태의 본질이 선명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처럼 ‘몸의 중심’이라는 명제가 선명해지자 연이어 교회의 중심 · 사회의 중심 · 정치의 중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제도 분명하게 다가왔다. 교회의 중심은 예수님 외에 가장 연약한 지체여야 한다는 것, 사회의 중심과 정치의 중심 또한 힘 있는 자들이 아니라 힘 없는 자들이어야 한다는 것이 확실하게 다가왔다. 동시에 힘있는 자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교회와 사회의 정치 현실이 얼마나 불의하고 패역한 구조인지, 몸의 구조와 얼마나 다르게 돌아가고 있는지가 보였다.

 

나는 한성수 교장선생님을 통해서 때로 한 마디 말이 일만 가지 진실을 말하기도 한다는 것, 한 마디 언어가 혼미하게 흐트러진 사태를 일목요연하게 정돈해주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언어의 힘이라는 사실을 유쾌하게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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