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십자가와 구속, 서문강역, 기독교문서선교회, 2001
머리말 / 에릭 알렉산더
그가 자신의 설교를 듣는 청중들에게 지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 것은 진리의 능력과 하나님의 위대함과 인간의 부족함, 그리고 성경의 영광스런 계시와 권위에 대한 강조였다. 본서에 소개된 내용은 1963년 가을에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교회당에서 설교된 내용들이다. 모두 갈라디아서 6:14의 “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의 말에 대한 설교였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피상적인 관점들은 피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만들어 낸다.”
- 로이드 존스 -
서론 / 크리스토퍼 케더우드
1963년 가을 이 연속설교가 거의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 무렵 달라스에서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 당했다는 끔직한 소식이 전해졌다. 많은 사람들은 케네디 대통령을 앞으로 도래할 핵으로 인한 대학살의 위협을 받는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인물로 알고 그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흑백 인종문제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한 인물이었다.
이것은 그가 대통령 취임식때 인용한 말이다
“사람은 모든 사물의 척도이다 원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
로이드 존스 박사는 20세기의 역사는 그러한 관점이 전혀 어리석고 무모한 것이었음을 의심의 여지없이 보여 준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때처럼 오늘도 똑같이 모든 인종을 불문하고 살아있는 모든 인류에게 필요하고 적합하다.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며 인종간의 진정한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갈보리의 피로 인하여 구속받은 사람들 속에서만 이루어진다고 그는 역설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그 메시지를 듣는 모든 사람들의 반응을 요구하며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소망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다른 것은 전혀 없다고 역설한다.
제 1 장 참 놀라운 십자가
(갈6:12-14)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 갈라디아 사람들은 바울의 전도와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다. 바울이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는 요점은 이 세상에서의 삶은 매우 심각하고 엄숙한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다 죽게 되어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되며 몸으로 행한 행실을 그 앞에 직고할 것이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은 우리가 이 세상의 삶에서 행한 것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인생은 거대한 과제이다. 육체를 위하여 심느냐, 성령을 위하여 심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심고 거두는 것의 문제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하면 성령을 위하여 심느냐? 어떻게 살아야만 이 세상과 오는 영원한 세계에서 기쁨과 행복과 평강의 축복을 거둘 것인가?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성경 전체가 그 문제의 해답을 말하고 있다.
- 참 메시지는 무엇인가? 무엇이 기독교 복음인가? 여기 대사도가 우리를 위해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는 그가 자랑하는 것이다. 바울이 지적하는 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 위에서의 죽으심이다. 사도들은 모두 한결같이 자기들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메시지를 전하노라‘고 말했다. 사도들은 그 십자가를 전했으며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결코 인기가 없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고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었다. 십자가를 전하면 그것이 언제나 사람들에게 거침이 되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전했고 그들이 계속 고수해 나갔기 때문에 급기야는 고난을 받아 순교의 죽음을 당하였다.
- 기독교 복음은 일차적으로 주님의 교훈이 아니다. 오늘날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예수님의 윤리적 가르침(산상설교)의 대목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든 세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적 존재로 생각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을 설교한다면 인류의 난제를 풀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을 더 악화시켜 순전한 정죄감 밖에는 불러 일으키지 못할 설교를 하는 격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산상설교를 이행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산상설교 외에는 자랑할 것이 결코 없나니 예수님의 윤리적 교훈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노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가르치지 않았다. “기독교 메시지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가 산 것처럼 살기로 작정하자”라는 식으로 자주 설교를 한다. 기독교 메시지는 결국 그 국면에 이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메시지의 핵심도 아니고 우선적인 것도 아니다. 사도가 최초로 전하는 것은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 사건의 의미이다.
- 또한 신약을 검토 해보면 십자가가 우리 주님 자신의 가르침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음을 발견한다.(마16:13-23) 베드로가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위대한 고백을 하고 난 후에 우리 주님께서 즉각적으로 자기가 죽으실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으며, 제자들은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음을 알수 있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책망하시며 사실 이렇게 말씀하신 셈이다.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 너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자체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너희를 구원하는 것은 내가 이제 막 하려고 하는 그 일이다.”
그런 다음에 최후의 만찬을 배설하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19-20) 주님의 가르침 속에 그 십자가가 명백하고 분명하고 단순하게 들어 있다.
-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 두 사람이 영으로 나타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달아날 방도를 모색했었다고 하지만 율법과 선지자들의 대표격인 모세와 엘리야가 십자가에서의 주님의 죽음에 관하여 주님과 논의하였던 것이다. 십자가가 중심이다.
복음서를 읽고 우리 주님의 죽으심에 할애된 분량을 비율로 계산해 보고 얼마나 상세하게 그것이 묘사 되었는지 살펴 보자. 그렇게 두드려져 있는 것은 중차대하고 중추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복음서들은 십자가로 가득 차 있다.
사도행전 13:14-41을 읽어 보라. 바울은 안디옥 사람들에게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강조했고, 특히 바로 이 사람과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전파되고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롬 3:20-25)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
(롬 5:06-10)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장, 2장, 15장, 고린도후서 5장을 읽어 보라. 우리 주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전도가 기독교 복음전도의 가장 본질적이고도 중심적인 메시지이다.
-어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피에 야유를 퍼부으며 십자가가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르침이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것이라고 말할 권한이 있는가? 신약 전체는 그리스도의 피,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을 선포한다. 그것이 기독교 복음의 중심이요 구원의 좋은 소식이다.
-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제일되고 중추적인 것이다, 사도가 그것을 전했던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그가 왜 이것을 자랑하는가?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이 십자가로 말미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울이 십자가를 전한 까닭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케 하고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 십자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점은 절대적으로 사활을 좌우하는 요점이다.
십자가는 우연적인 사건도 아니고 공포스런 비극도 부끄러운 사건도 아니다. 그 십자가를 중심에 전면에 놓으라. 십자가를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선포하라.(갈3:1) 십자가를 후회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그것을 잊으려고 하거나 이상화시키려 하지 말라. 또한 십자가에 대하여 철학적으로 말하려 하지 말라. 또 그것을 아름답고 기이한 것으로 만들려고도 하지 말라. 여러분이 할 말은 “나는 그것을 사랑하노라”여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지 아니하셨으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전해야 할 복음도 없었을 것이다.
- 이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가?
여러분은 작은 갈보리 언덕위에 세워진 세 개의 십자가를 바라보라. 그리고 중간에 있는 십자가와 거기에 달려 죽어가는 그분을 바라보라. 그 분은 누구인가? 그는 종교적으로 뛰어난 천재인가? 정치적 선동자인가?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주’이시다. 예수님은 영광의 주님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다. 그는 복되신 성삼위 중 제2격이시다. 그는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 분은 자신이 어째서 세상에 오셨는지, 그 십자가 위에서 무엇을 하셔야 하시는지 정확히 말씀하셨다(마20:28). 하나님의 아들은 죽기 위해 하늘로부터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바로 그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던 것이다. 죽음의 고난을 받기 위해서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되셨던 것이다. 죽기 위해서 인성을 취하셨다. 저와 여러분과 모든 인류가 죄 아래 있고 거룩한 하나님의 정죄 아래 있기 때문에, 멸망당할 이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다. 죄를 심판하셔야 한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 구약에서 죄에 관한 희생제사에서 보게 되며,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죽음이 지나쳤으며 그들의 죄는 심판받지 않았다.
세례 요한은 “보라 ---저 하나님의 어린양,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외쳤다. 다른 모든 것들의 모형과 그림자와 상징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가 받으실 제물을 공급하셨다. 저와 여러분의 죄를 취하여 그 자신의 아들의 머리위에 두시고 그 아들을 치셨다. 심판으로 끝내 죽이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갈2:19-20)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것이 복음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율법이 그리스도 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는 자유케 되었다.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오직 한 가지 일은 이 메시지를 믿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말라.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말한다면 진리를 알지 못한 것이다. 여러분이 어떠한 사람이었던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가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으며 대신 형벌을 받으신 것을 믿고 감사한다면, 여러분은 철저하고 완전하게 의롭다 함을 받는다. 사도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는 전 세계를 두루 다니면서 전할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을 찬미하며 모든 날들을 기쁘고 즐겁게 보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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