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부흥이 오는 방식들
로이드 존스는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의 범죄에 대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예를 가지고 부흥이 오는 방법을 설명한다.
먼저 자신들의 처지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인식한 사람들이 회개가 나오게 된다. 회개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빼놓고는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1) 로이드 존스는 바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회개가 부흥이 오는 방식들로 이해하고 있는듯하다.
다음으로 회개에 이르는 것. 잘못된 것의 심각성을 깨닫고 돌이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이다. 사람들 이 진정으로 각성을 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심각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인식 하게 된다. 회개란 우리의 죄악성을 인식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것을 우리 힘의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하고 싶은 열망을 가지는 것2)이다.
그리고 그는 부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성도들이 부흥을 갈망하여야 할 것이며 그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 그는 부흥을 위한 기도는 교회가 다시 교회답도록 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비상한 부어주심이 아니고서는 그 어느 것도 그러한 일을 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온 세계의 관심을 사로잡을 만큼 두드러지고 표적적인 것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3)
그는 이러한 것을 오순절의 반복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위하여 초대교회는 기도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부흥을 위한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영예와 그 이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흥의 세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간적인 주도권을 갖지 않으면서 부흥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기도라는 것이 그의 주장인 듯하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회개를 위한 기도도 역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고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럼으로 인간이 회개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진정한 회개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흥이 왔다갔다는 증거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부흥의 역사를 진정으로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9. 부흥의 결과들
부흥의 결과들 중에 첫째는 감정적인 요소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심오한 감동과 흥분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신적인 현상들도 나타나는데 그것은 마음에 주는 영향들입니다.
부정적인 면에서:
먼저 그는 이러한 것들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1> 사람들이 목에 무엇인가가 걸려 있다고 하는 느낌을 가지는 것은 히스테리 증상이지 부흥의 증상은 아니라 본다. 부흥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는 현상에 이러한 태도들이 나타나기도 한 것이다.
2>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웃고 울거나 아니면 갑자기 울다가 금방 또 웃는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빈 야드 운동이나 오순절 계통의 운동들에게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이유이다.
3> 히스테리를 나타내게 되면 거의 틀림없이 수족이나 말초 신경이 마구 움직이게 합니다. 이것도 역시 부흥에 맞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이나 오순절 계통에서 진동의 은사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러한 것을 보면서 이것은 히스테리 적이라고 말한다.
4> 히스테리는 거의 전적으로 여성에게만 국한 된다는 것이 엄격한 의학적 사실로 증명하는데 특히 여자들 중에 건강이 약하거나 지쳐 있는 유의 여자들에게 나타나는데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4) 로이드 존스는 1859년 아일랜드의 일어난 부흥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결과들에 조심스레 구별해야 할 것을 밝혀주고 있다.
긍정적인 면:
부흥의 주도적인 결과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수천의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와 참된 신자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5)
부흥이 임하게 될 때,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의식하게 되다. 교회는 진리에 대한 큰 확신을 갖게 되며 큰 찬양과 기쁨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는 부흥의 역사 속에 마귀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구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부흥의 때에 마귀의 역사가 더 강력하게 역사하다고 말하며 요한1서 4장 2-4를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라고 말하면서 구별해야 할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 능력과 그 권세가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부흥을 추구해야 한다. 그 부흥이 임하면 그 부흥은 너무나도 기이해서 이상하고 비상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운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알고, 거짓된 것과 속임수 그리고 악한 영에 속한 모든 것을 분간해 내고 제어해야 할 것6)을 말한다.
나가는 말
20세기의 믿음의 거장으로 불리는 두 사람을 통해서 우리는 부흥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 보았다.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올바르게 부흥을 이해하고 있는가? 이것에 대하여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빌리 그래함의 부흥에 대하여 그의 설교는 복음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인위적이고 캠페인을 통한 홍보와 그리고 결단의 시간이라는 방법을 통한 인위적인 것에 대하여서는 경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 안에 인간적인 요소가 너무도 강하다는 것이다.
많은 교회에서 전도 집회, 혹은 대각성 전도 집회를 통해서 결단의 시간들, 영접기도 등을 통해서 인위적인 결단을 유도하기도 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고 again1907년이라는 구호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모습들, 이러 저러한 조건들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이루면 하나님이 부흥을 주어야만 하는 생각을 강압하는 것이 너무도 인간적이고 알미니안적인 사고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비해서 로이드 존스는 부흥은 교회사의 연구와 그 시대적인 경향과 결과들을 연구하면서 부흥을 인간적인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이다. 그리고 우리가 처해진 부흥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할 지라도 찰스 피니 같은 그러한 조건이 없어지면 부흥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임을 강력히 주장하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떠들고 있는 이러한 운동들이 위험한 것이고 오히려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부흥의 방해물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우며 우리는 2007년만 부흥이 임할 것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들이 하나님이 임하시는 부흥의 역사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 주님의 은혜를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은혜와 임하심의 역사를 맛보면 우리의 신학과 신앙과 삶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에게 먼저 개인적인 부흥이 임하여야 할 것이고 다음으로 교회에 부흥이 임하여 우리의 죄악과 누추함들과 비루함들을 모두 제거하는 역사가 임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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