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로이드 존스와 빌리 그래함의 부흥 이해(1) / 백주현목사

새벽지기1 2016. 4. 10. 09:41


들어가는 말:


1907년의 평양 대 부흥역사를 가지고 한국교회사에 하나님의 참으로 놀라운 은혜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한국교회가 이처럼 성장하고 자라난 것도 이때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때에 일어난 부흥이 자꾸만 변질되어 감을 알 수 있고 지금도 again1907이라는 제목으로 다시금 부흥이 올 수 있다 는 캠페인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흥분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1907년이 되었을 때에 부흥의 역사가 오지 않는다면 어찌될 것인가? 많은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이것을 부흥-교회의 성장지향적인 성공주의-에 이용하고 있지 않는지 우려가 깊다. 릭 워렌이 와서 부흥의 파도를 타라는 슬로건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부흥이 오라고 소리 지르고 슬로건을 외친다고 과연 성령이 오실까? 의구심이 든다.


물론 저 개인적으로도 다시금 부흥이 임하였으면 한다. 로이드 존스는 이것은 기독교의 낭만이라고 한다. 또한 이것은 설교자의 낭만이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부흥의 놀라운 역사를 허락하시길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인간적인 조작적인 부흥을 통한 부흥과 하나님의 갑작스러운 임재적 부흥과 구별하고 바르게 서야 하고 더불어 이 부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로이드 존스의 부흥에 대한 이해와 그에 이 시대의 유명한 부흥전도자인 빌리 그래함을 비교하자고 했는데 참 미흡한 소견을 내 놓게 되었다.


로이드 존스와 빌리 그래함의 어린 시절과 그들이 부름 받고 목회를 한 방향을 보면서 생각하여 보기로 한다.


1. 두 사람들의 배경


로이드 존스

로이드 존스는 1899년 12월 20일 남 웨일즈 카디프에서 출생했다. 그리고 1981년 3월 1일에 주님의 품에 안기었다. 그의 아버지는 식료품상으로 성공한 사람이고 낙천주의자이다. (초기 40년)그는 1904년과 1905년에 있었던 부흥의 시기에 어린아이로 체험을 한듯하다. 그리고 그는 내과 의사가 되기 위해 수업을 받고 그는 왕실 주치의로 유명했던 호우더 경의 조수로 미래가 보장된 상태였으나 목회자로 소명을 받고 신학수업을 받지 않고 아베라본에서 처음으로 목회를 시작한다. 이곳에서 교회의 부흥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10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웨스트민스터 채플로 옮겨 은퇴할 때까지 사역을 하는 가운데 영국이라는 나라의 18세기 같은 부흥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부흥을 맛보게 된다.


빌리 그래함

  빌리 그래함 (W, F. Graham) 1918년 북 캘리포니아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의 부친은 결코 까닭 없이 화를 내지 않는 침착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신실한 장로교인인 모친은 빌리가 회심하고 설교자가 되는 길을 기도로 닦아준 믿음의 인도자였다. 빌리의 성품은 우선 부지런함이 큰 장점이었다. 그리 가난한 집은 아니었지만 소년 시절부터 꼭 세시면 일어나 소의 젖을 짰다. 그는 역사책을 애독하였고 이를 통해 질이 좀 낮은 교육의 약점을 극복하였다. 그는 14세 때에 100여권의  책을 읽었다. 빌리는 1934년 그가 16세때에 모더카이가 인도하는 복음전도 집회에서  회심을 경험하였다. 그때의 설교자 모더카이는 지옥과 심판을 선포하는 보수적 내용의 설교를 일관하였지만 빌리의 마음을 강하게 자극했고 그 결단에 따라 평생 설교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1943년에 일리노이주 휘튼 대학을 졸업하였고, 중국에서 선교를 했던  외과 의사의 딸 루스 벨과 결혼했다.

   그는 십대선교회(YFC)를 위해서도 많은 일을 했다. 그는 1946년에서 1949년까지 회장으로 일했다. 이 경험은 그로 하여금 강한 확신을 갖게 해주었기 때문에 미니아폴리스에 전도협회를 만들었다(1950). 또한 <결단의 시간>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매스컴 설교가 활기찬 진척을 보였다.  YFC 활동을 통해 빌리는 서구 사회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영적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2. 이들의 체험들

로이드 존스는 1904-5년의 부흥을 체험한 듯하다. 어린아이지만 이때에 부흥의 분위기와 역사를 보았다. 그리고 의사로서의 수업을 받는 중에 주님의 분명한 소명을 받게 되고 특히 그의 목회 생활 가운데 이러한 부흥을 기대하고 그러한 부흥을 체험한 듯하다.

먼저 가정에서부터 부흥의 증거로 로이드 존스의 아내 베단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기도회에도 정규적으로 참석한 열심 있는 신자였다. 언제나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여긴 것은 물론이다. 그러던 중 모든 사람은 다 똑같이 죄에서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남편의 삭개오에 대한 설교를 듣고 충격을 받게 된다. 충격이라기보다는 자신도 신앙이 없는 사람과 똑같은 처지에 있다는 가르침을 거부하고 혐오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결국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런 체험을 하기까지 2년간 남편의 목회 현장에서 열심히 기도한 성도임에 틀림없다. 후일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다. "일요일 밤마다 나는 어떤 사람이 회심하게 되기를 늘 기도하곤 했습니다. 회심이란 술주정뱅이나 창녀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술꾼들이 회심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면서도 때로는 그들의 기쁨이 충만하고 자유를 누리고 나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그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는 부러워하기까지 했습니다." 1)

그리고 그의 설교를 통하여 그의 아내와 수많은 악명높은 사람들이 회심하는 것을 체험하였고 더 나가 교회가 변화되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그 부흥은 그가 사역한 그 지역에 영향을 미치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목회한 교회마다에서 교회가 달라지고 사람들이 회심하는 체험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런데 비해서 빌리 그래함은 미국에서 유행하던 부흥집회를 통해서 1934년에 회심을 했다고 이해한다. 그는 수많은 집회를 통해서 결신자를 얻었다고 말한다. 수많은 결신자들에게서 편지를 받게 되었다. 둘 다 체험이 있고 그 체험을 통하여 평생을 그 목적을 두고 목회를 한 듯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체험자체가 전혀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