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17)

새벽지기1 2016. 4. 26. 07:43


주 되심의 영성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 형상이 회복된 사람들이 사회를 변혁하는 일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전제한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주 되심이 실현되는 사회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서만 온전히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실재(reality)인 하나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이 세우신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하나님 나라는 그 당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나라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하나님만이 세우시는 나라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실현된 사회는 예수 그리스도 당시 열심당(the Zealots) 사람들이 정치 혁명을 통해 회복하고자 했던 유대인의 정치적 이상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칸트(I. Kant)나 리츌(A. Ritschl)이 이해한 것과 같이 사람이 도덕성 개발을 통해 성취하는 윤리적 공동체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몰트만(J. Moltmann)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존재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써 이룩될 수 있는 공동체도 아니다. 종교개혁자 깔뱅(John Calvin)이 정확히 지적하였듯이,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유지하거나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만이 온전히 이루는 실재(reality)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실현되는 사회는 이미와 아직(already-not yet)의 긴장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가 주로서 다스리는 사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실현되었으나 아직도 미래의 최종적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공동체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옴으로써 자신의 주 되심을 드러내었다. 그는 이 땅에서 살고 행한 것을 통해 특히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함으로써 만물의 주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성령을 통해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사람들을 그의 주 되심의 영역 안으로 이끌어 들였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사람들은 그와 연합할 뿐만 아니라 그의 다스림을 받아간다. 그들은 이제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의 사랑을 실천한다. 역사의 끝은 이미 실현된 그리스도의 주되심의 최종적 완성이다.


하나님 형상의 회복은 사회를 변혁시키는 노력으로 이어지는데 그 변혁된 사회의 구체적 모습이 무엇인가? 그 첫째는 공정사회다. 공정치 못한 사회적 행동이 불러일으킨 극심한 대립과 갈등은 사회 기반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정성은 사회 통합의 전제이자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 통합이 없이는 공동체 의식이 발휘될 수 없다. 공동체 의식이 없으면 사람들이 함께 바람직한 사회를 이루어가려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사회는 쇠퇴하게 된다. 


그러면 공정사회란 어떠한 것인가? 공정사회는 하나님 나라와 떨어져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실현된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첫째, 공정사회란 하나님이 이 땅에 실현해가는 공동체다. 그 공동체의 특징적 모습가운데 하나는 정의다. 구약의 선지자들 특히 아모스와 미가 선지자는 이 땅에 정의와 공평이 구현되는 사회를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외쳤다. 이들에게 나그네를 돌아보고,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론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잘 지적한 것처럼,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힘쓰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 살아가는 중요한 방식이다. 이러한 사회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몫을 나눠 가지는 것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정치적 행동이나 사회 질서의 변화를 통해서는 완전히 실현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다만 외부적 정의만을 이룰 뿐이다. 그것은, 판넨베르크가 잘 지적한 것과 같이, 언제나 권력이 남용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는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갈 때만 온전히 실현된다. 그리스도는 그를 주로 고백할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의 다스림을 받아가는 사람들이 정의를 경험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