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는
로마서 본론의 첫부분이 됩니다.
이 부분의 대주제는 인간의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정죄
로 잡을 수 있습니다.
18절을 읽어 봅시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진노라는 개념은 오늘날 별로 인기가 없는
신학적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바쁜데
하나님의 진노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지요.
하지만 인간의 불의함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올곧게
강조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경건치 못함과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무섭고 공포스러운
저주와 진노가 강조되어야만,
죄인들이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의 필요를 느끼고,
도피성되신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께 돌아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죄악과 불의에 대한
거룩하고 공의로운 분노입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은 끝내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영원한 지옥의 심판에 처하게 할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과 불의는 하나님의 무한한 권위와 영광을 짓밟고,
욕되게 하는 것이기에 무한히 형벌받아야 합니다.
그만큼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죄로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죄의 그 무서움과 심각성을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조금 이해한듯 하다가도 곧 잊어 버립니다.
성령님! 우리가 우리 죄를 정확하게 보고 깨닫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에드워즈는 신앙감정론에서 성령님이 참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죄의 악성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인간의 불의함은 경건치 않음과 연결됩니다.
그것은 인간의 사악함이 결국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려는 마음,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중심에 모시지
않으려은 불경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죠.
거꾸로 말하면 의와 경건은
결국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중심에 모시는 것,
바로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불의함은 단순히 진리에 대한 무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불교가 제창하는 진리에 대하여 인간이 무지한 것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관찰의 결과일 뿐입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은 인간이 고의적으로 진리를 막는다고 말합니다.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억압한다는 것입니다.
고의로 진리를 진리로 인정하지 않고
그 진리가 드러나지 못하도록 강압적으로 억누른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기독교가 말하는 죄는 단순한 무지의 차원을 넘어서서
진리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고의적이고 의도적인 억누름,
그리고 폭압적인 반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가 이미 진리되신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죠.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은
성령님으로 우리 영혼에 인치시고
우리의 의지를 부드럽게 하셔서
진리를 사랑하고 예찬하고 따르게 하십니다.
진리를 의도적으로 억누르고 억합하던 죄인이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진리를 따라 살며, 진리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변화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구원의 은총과 구원의 삶을
우리 모두 깊이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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