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4 15

영적 만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출16:1-20)

영적 만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출16:1-20) 본문에서는 백성들의 불평소리가 본 좀 더 강화된다. 이번에는 음식이 없음을 한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의 만나와 메추라기 공급하셨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생명을 보존해 주셨다. 한편 ‘만나’는 계시의 성취적 측면에서 인류의 생명을 위해 하늘로부터 친히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예표한다(요6:29-58). 우리가 매일 먹는 양식은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내리시는 햇볕과 때에 따라 내리시는 우로 덕분이다. 위로부터 내리시는 이 자연 섭리가 아니면 우리는 살아 갈 수 가 없다. 마찬가지고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우리의 구원과 영생은 불가능하다. 인생 광야에서 만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우리는 살아 갈 ..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베드로후서3:18)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자라고, 변화합니다. 심지어 죽은 나무도 변하고, 바위도 세월에 깎이고, 변형이 생깁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받았으니 계속해서 자라가고, 성숙해가야 합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은혜의 구원을 더 확실하게, 더 선명하게 이해하고, 은혜의 구원을 누리고, 영적인 성장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은 완전하지만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완성되었다거나, 우리가 완전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결코 아니고, 단지 새생명의 시작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서 계속해서 성장할뿐..

방형과 함께 아침을!(2023.2.14)

새벽이 참 좋습니다. 생명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살아있음의 신비를 깨닫고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는 귀한 시간입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나를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입니다. 돌아보면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아니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좋은 글을 읽을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좋은 이웃과 만나 삶과 마음을 나누고 살아간다는 것이 나의 삶 가운데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세월이 갈수록 확인하게 됩니다. '우분투(Ubuntu)'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아프리카 반투족의 인사말이랍니다. 돌아보니 나의 모든 이웃에게 고백해야 할 인사입니다. 나의 존재의 근원은 분명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 일상의 삶에서 나..

삶과 죽음의 경계 (대상 21:27-22:1)

(20233/02/12, 주현 후 제6주) [그리고 주님께서 천사에게 명하셔서, 그의 칼을 칼집에 꽂게 하셨다. 그 때에 다윗은, 주님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그에게 응답하여 주심을 보고, 거기에서 제사를 드렸다. 그 때에,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주님의 성막과 번제단이 기브온 산당에 있었으나, 다윗은 주님의 천사의 칼이 무서워, 그 앞으로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 그 때에 다윗이 말하였다. “바로 이 곳이 주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 곳이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다.”] • 벼랑 끝에 선 사람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그리고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 피해자들에게 임하시기를 빕니다. 벌써 사망자가 2만 5천 명에 이른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건물의 잔해에 갇힌 채 구조를 ..

무리와 제자(2)(막 7: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막 7:17) 예수님이 무리와 헤어져 집으로 들어가시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바로 앞에서 받은 가르침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밖과 안이라는 비유가 가리키는 게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이들이 실제로 몰라서 이렇게 물었을까요, 아니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걸 확인해보기 위해서 이렇게 물었을까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는 밖과 안이라는 비유가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내용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앞에서 정결의식 문제로 논란이 있었고, 고르반이 거론되었으니까 생각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게 무엇인지 충분히 눈치 챌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도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무리와 제자(1) (막 7: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막 7:17) 예수님은 정결의식 문제로 바리새인들과 한바탕 논쟁을 벌인 후에 무리를 떠나서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집이 누구의 집인지는 모릅니다. 제자의 집에 들어가셨을 수도 있고, 민박집에 들어가셨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글의 흐름으로 볼 때 이런 대목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는 바람에 시작된 바리새인들과 논쟁이 일어난 곳이 집이었을 텐데요. 중간에(14절) 무리를 다시 불러서 말씀을 이어가셨다는 구절을 근거로 본다면 이 전체 이야기는(막 7:1-23) 세 토막으로 구분됩니다. 1-13절은 밥 먹는 자리에서 일어난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이고, 14-16절은 바로 그곳일 수도 있고 다른 곳일 수도 있는 곳에..

패러독스(4)(막 7: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막 7:16) 한국교회는 밖의 문제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문제들이 모두 신앙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해외 선교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국교회에서 파송하는 해외 선교사의 숫자가 미국 다음으로 많다고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일만 오륙천 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숫자에는 아마 명분만 선교사이지 실제로는 현지에서 그냥 생활하는 이들도 포함되었겠지만, 엄청난 숫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런 선교 열풍은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영적인 관심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능력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업적주의의 발현일 수도 있습니다.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해외 선교 활동을 하는 분들을 매도..

신학1: 존재론과 기원론

스티븐 슈바르츠는 말한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유신론과 신이 없다고 믿는 무신론은 단순한 두 가지의 신념이 아니다. 그것들은 존재 전체를 바라보는 두 가지 근본적인 방식이다. 그 존재 너머에 의미 있는 무엇이 더 있다는 것이 유신론이고, 그 존재 너머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무신론이다.” 신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존재론과 기원론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우주와 우리 주변의 모든 생명체와 사물들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느냐의 질문은 당연히 그 존재의 시작은 언제, 어떻게 된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유신론에서 존재의 근원은 신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신이 창조함으로써 존재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존재의 저 너머에 초자연적 존재인 신이 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과..

행복

행복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가지는 것도 행복이지만, 있는 것을 즐기는 것도 행복입니다(중략). 아파트 베란다에서 꽃을 피운 장미 한 송이와 인사를 나누는 것이 작은 행복입니다. 책을 읽다 마음이 머무는 문장 하나에 밑줄을 치는 것이 고소한 행복입니다(중략). 운동을 하면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는 것이 행복입니다. 숲길을 걷다 이름 모를 새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는 것도 행복입니다. 가까운 전시장에 들러 시선을 빼앗는 그림 한 점 앞에 서 있는 것이 행복인 겁니다(중략). 내 집 앞마당에서 지저귀고 있는 새가 바로 행복의 파랑새입니다.” 정균승 저(著) 《내가 나로 살아갈 자유》 (티핑포인트, 196-19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과거는 부도수표요. 미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