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3 16

구약의 십자가 사건 유월절(출12:1-28)

구약의 십자가 사건 유월절(출12:1-28) 본문은 마지막 재앙이 시작되기에 앞서 유월절과 관련된 규례가 기록되고 있다. 이 마지막 재앙은 유월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두 사건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구속사적 맥락에서 하나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두 사건은 인류의 희생양으로 오신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피 흘리심으로 마침내 그를 믿는 자들이 죽음과 죄악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새 삶을 찾게 되었음을 상징해 주는 기념비적 사건이다. 한편 본문 전반부는 구속사의 큰 획을 긋는 유월절 규례를 제시해 주고 있으며, 중반부는 아뷥월 14일 저녁에 치러지는 유월절과 무교절과 연결되어 7일간의 무교절 규례가 제시되는 장면, 그리고 후반부는 유월절 규례를 지킴으로 장자 사망의 재앙에서 모면하는 장면이..

하늘땅사람이야기 46 - 나무가 부르는 노래

나무가 부르는 노래 평안하신지요? 간밤에는 창문을 흔드는 바람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베란다 창문이 좀 열려 있었나 봅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시원하게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모처럼 내리는 단비였습니다. 충남에서는 물 부족으로 제한 급수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현지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인데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고 그 심각성을 깊이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을까요? 가만히 어두운 창가에 서서 바람이 휘젓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물끄러미.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잠시 나무를 흔들다가 놓아주곤 하는 바람, 바람이 부는 대로 자유롭게 춤을 추는 나뭇잎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목사님께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어린아이..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갈라디아서2: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갈라디아서2:9)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사랑을 받았던 그리고 이미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로 확고하게 인정받았던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베로와 요한에게 새신자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던 바울과 친교의 악수를 하게 된 것은 바울에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가능했다는 바울의 간증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나, 극적인 회심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렇게 흔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이 은혜는 실체가 없는 ..

헛된 예배(5) (막 7: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어제 저는 가르멜 산에서 벌어졌던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와의 싸움에 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너무 짧은 글이라서 오해가 있을지 몰라 오늘 부연해서 설명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관점에서 바알 선지자들을 용납하지 못할 겁니다. 하나는 그의 자해 행위입니다. 칼과 창으로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린 그들의 행위는 성서의 신앙에서 볼 때 이교적인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무조건 매도할 수는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바치려고 했고, 입다가 딸을 실제로 제물로 바친 행위는 바알 선지자들의 자해보다 질적으로 훨씬 나쁩니다. 다른 하나는 바알 선지자들이 어떤 형상을 만들어서 섬겼다는 사실입니다. 구약..

헛된 예배(4) (막 7: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헛된 예배 개념을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종교현상에 관한 몇 가지 예를 들어야겠습니다. 고대 근동의 종교에서는 자극적인 종교행위를 자주 행했습니다. 그런 흔적이 구약성서에도 제법 나오는데, 아마 엘리야 전승이 가장 대표적인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엘리야는 갈르멜산에서 바알 선지가 450명과 대결합니다. 엘리야를 위한 제단과 바알 선지자들을 위한 제단 위에 각각 황소 한 마리를 올려놓았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바알에게 기도를 드렸고, 엘리야는 야훼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렸는데, 결국 엘리야의 제단에 놓인 황소만 불에 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대목에 바알 선지자들과 엘리야의 기도하는 장면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헛된 예배(3) (막 7: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우리는 지금 이사야가 언급했고, 예수님이 인용한 헛된 예배에 관해서 묵상을 나누는 중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것인 양 가르치는 헛된 예배는 이사야나 예수님 당시만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합니다. 하나님과의 가장 내밀하고 심층적인 영적 소통이라 할 기도가 사람들의 종교적 욕망에 부응하는 특새로 자리하는 현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제가 다른 글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소위 이라는 열린 예배도 역시 사람의 계명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특새나 열린 예배가 사람의 계명으로 인한 헛된 예배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군요. 제가 지금 그런 이름이 붙은 모든 집회를 싸잡아 매도하려는 ..

헛된 예배(2) (막 7: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저는 어제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종교적 열정은 헛된 예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이며, 동시에 그것을 인용한 우리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제사를 드려도 인간의 계명에 머물러 있는 한 그것은 헛되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기도를 드렸나, 하는 것에 마음이 쏠려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얼마나 많은 기도모임이 있습니까? 기억하기도 힘든 온갖 종류의 기도회가 퍼포먼스처럼 개최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아마 ‘특새’겠지요. 한국의 몇몇 교회가 이 특새로 이름을 날린 후에 많은 ..

헛된 예배(1) (막 7: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이사야는 오늘 본문에서 ‘헛된 예배’에 대해서 일침을 놓습니다. 헛된 예배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사야 당시의 제사가 너무 허술했다는 말인가, 하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들이 기도를 적게 했다거나 번제물이 형편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 당시의 제사도 다른 때나 마찬가지로 최상의 제사였을 겁니다. 본문에 한정해서 본다면 사람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것인 양 가르치는 것이 곧 헛된 예배입니다. 이 주제는 제가 지난 며칠 동안 이미 말씀드린 내용이지만 헛된 예배와 연관해서 다시 한 번 더 짚어야겠습니다. 이 대목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동시에 혼동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 행위에서 ..

당신은 실패했습니까?

당신은 실패했습니까? “마이크로소프트는 실패한 기업에 몸담은 경력이 있는 간부들을 의도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실패할 때는 창조성이 자극되게 마련이다. 밤낮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을 주위에 두고 싶다. 앞으로 마이크로소프트도 반드시 실패를 겪을 것이다. 난국을 타개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빛을 발할 것이다.” 빌 게이츠 저(著) 이규행 역(譯)《빌게이츠의 미래로 가는 길》 (도서출판 삼성, 10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인생은 실패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그릇된 반응’ 으로 실패하는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실패의 의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실패는 당신이 실패자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성공하지 못했..

기독교 세계관의 메타네러티브

세계관은 이야기의 형태로 전달된다. 그 이야기는 세상의 시작부터 종말까지 아우르는 큰 이야기이다. 이 큰 이야기를 영어로는 meta-narrative (메타네러티브)라고 한다. 세계관의 메타네러티브에는 내 삶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의 메타네러티브를 근거로 분석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적 세계관이라고도 한다. 크레이그 바르톨로뮤와 마이클 고힌은 “성경은 드라마다”라는 책에서 성경의 이야기를 창조-타락-구속-완성의 4단계로 설명한다. 창세기 1~2장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다. 창세기 3장의 선악과 사건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단절되는 ‘타락’ 사건이 일어난다. 창세기 4장부터 요한계시록 20장까지는 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그에 반응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