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낮은 곳에서 부르는 생명의 노래'

잘 노는 것이 잘 사는 삶이다

새벽지기1 2020. 1. 28. 06:55


잘 노는 것이
잘 사는 삶이다


나이가 들면 우리나라 정서에는 역시 트롯이나 가곡, 그리고 시조나 민요
가 자연스레 우리의 감정 선을 건드리며 피부에 와 닿는다.

어릴 때 목욕탕에 가면 어른들이 뜨거운 열탕 안에서 시조를 읊조리는 장면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뜨거운 물에 몸을 데우면서도 되려 시원하다며 삭신을 어루만지던 어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이젠 나도 이 모든 것이 이해되고 공감이 되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예전 우리나라에는 잔치나 모임 등에서 어르신들이 모여 노는 곳에 가면 흥겨운 민요 한 가락쯤은 펼쳐지곤 했다.

장 많이 들었던 노래가 바로 이 노래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시구 절시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화란춘성(花爛春盛) 만화방창(萬化方暢)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차차차”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며는 기우나니라.”는 이 부분의 가사는

자연 순환의 이치를 노래 말에 담아 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노래의 가사로 존재하기 전에 하나의 인생철학이요, 인생 교훈의 경구인 것이다.

원래 화무십일홍이란 이 말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반드시 뒤에 다른 말이 따라온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 十一紅 權不十年)이 본래 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그런 진리를 설파하는 노래를 우리 조상들은 산과 들에서, 일하면서 불렀다.

우리 민족은 꽃이 피고 지는 이치와 인생과 자연이 순환하는 이치를 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러한 이치를 우리 인생에 적용시켜 자연의 순리를 따르려는 마음까지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심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작금의 우리나라 국가의 총체적 적폐가 바로 이 부분에 한 집착과
도덕적 불감증 때문이다.


또한 이 노래가 어찌 보면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무위도식하는 백수건달처

일을 회피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평생을 열심히 일하고 은퇴 후에 자신의 여정을 즐겁게 보내려는 사람들에게는

백 번 수긍이 가는 노랫말이 될 것이다.

젊어서는 어깨에 짊어진 삶의 저울추가 너무 무거워 옆도, 뒤도, 안돌아보고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바쁜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를 정도로 자신을 성찰할 겨를도 없이 제로 놀아보지도 못한 채

이제 나이 들어 어깨, 무릎, 관절 등의 약해진 체력에 서럽고 안타까운 사연의 노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작 깨닫자 석양이라고 여행도 젊을 때 다녀야 한다는 말이 얼마나 지당한 말인지 모른다.

여행은 가슴 떨릴 때 하는 것이지, 다리 떨릴 때 하는 일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대개의 경우 절경과 유명한 관광 명소는 평소에 사람들이 찾기 쉽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런 지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우선 건강해야 하는데,

건강과 체력이 약해져 숨이 차고 호흡이 딸리며 몸이 허약해 가파른 산이나 언덕을 오르지 못하고

버스에 앉은 채 초상화에 가까운 증명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름다운 삶 중의 하나는 열심히 사는 삶이고, 열심히 사는 삶 중에 재미있게 노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열심히 놀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열심히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놀 때 열심히 놀고 일할 때 열심히 일하는 삶이 멋지고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는가?

주변에 의외로 일 중독자가 많아 과부하가 걸리고 병이 들고 심각한 상태에 이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지야 어떠하든 이는 더 중요한 쉼과 안식의 소중함을 소홀히 함과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을 넘어섬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홍보 영상이 서글픈 말인지 위로의 말인지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들릴 것이겠지
만........ 


노는 일에 논다는 말을 굳이 ‘할 일없이 지낸다.’는 말의 의미로 받을 필요는 없다.

‘어울려 잘 지낸다.’는 말의 의미와 또한 ‘놓는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는 의미로 승화시켜 이해한다면 얼마나 창조적이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말은 언뜻 놓으세, 나누세, 섬기세, 내려놓으세 등등의 말로 새긴다면 얼마나 아름다우랴!


노는 일에 대한 중요성과 삶의 통찰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노는 일이 나태와 게으름의 명사에 지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놀고 있네.’라고 비아냥는 부정적인 언사로 사용할까.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의 구조를 갖는다.

하나님이 계신 일터, 놀이터, 자연, 내 마음속 어디든 성전이다.

사는 것은 노는 것이다.

‘여가’는 희랍어로 스콜레(scole)라고 한다.

학교(school)나 학자(scholar)의 어원이 여기에서 나왔다.

교양을 쌓고 자기 수양에도 충실하다는 의미다.
로마시대에 ‘재미’의 요소가 가미되면서 지금의 여가 개념으로 확립됐다.

래서 진정한 의미의 여가문화는 재미와 행복, 휴식의 심리학적 가치를 아우르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학교에서는 지적 논쟁뿐만 아니라 교육을 위한 여가 시간도 즐길 수 있었다.

어원대로라면 ‘학교’는 생각하면 ‘즐거운 공간’이어야 하는데,

요즘 학생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을까?

본래의 의미인 ‘한가한’ ‘여유로움’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바로 오늘날의 학교 모습이다.

놀이는 삶의 총체적인 모든 범위를 아우르는 말이다.

놀이는 창조와 동의어이다.

젊어서만 노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잘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