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낮은 곳에서 부르는 생명의 노래'

일상은 거룩한 나의 구유

새벽지기1 2020. 1. 29. 06:48


일상은 거룩한 나의 구유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과 아내, 그리고 모든 여인들의 수고와 사랑을 생각하며

철든 신앙의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정현종 시인의 부엌을 기리는 노래가 있다.

‘부엌은 여자들의 권력의 원천이기도하며

어머니(아내)의 사랑의 좌소(坐所, Seat)이기도 하다.

부엌은 수천 년 동안 여성, 특히 어머니의 공간으로 여겨졌다.

여자가 부엌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자리이다.

부엌은 모든 음식을 준비하는 성단(聖壇)’이라는 것이다.


너무 멋진 표현이다.

이것이야말로 그 음식을 통하여 하나 되는 식탁교제의 전형이다.


박은율 시인의 부엌 칸타타에서

‘부엌은 나의 제단,

일상은 나의 거룩한 구유,

나는 부엌의 사제, 희생제물과 번제물을 마련한다.

불과 샘 칼과 도마의 혼성4부 합창,

압력솥의 볼레로, 냄비와 프라이팬과 주전자의 푸가,

접시와 사발들의 마주르카, 

영대 대신신 앞치마를 두른 나는 부엌의 제사장,

부엌은 나의 성스러운 나의 제단’ 등의 표현들은

가히 사명적인 거룩한 하늘의
소명임에 틀림없다.


돌봄과 양육, 섬김과 나눔 등 살림의 가치들은 여성적 가치들과 일치한다.
여성이 일상의 살림을 통해서 실천하여 온 가치들이 생명문화 형성의 중요한 가치가 된다.

살림은 단순한 가사노동의 의미를 넘어

죽임의 반말로서의 살림의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철학과 사상이 담긴 말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혜의 신비이며 그것은 살림, 모든 가치의 근거이다.

살림의 일은 하찮고 작은 것들이라 여기기 쉽지만

그러나 생명을 지속시키고 살려내는 힘이다.

밥상을 차리는 부엌에서의 노동이야말로 참으로 위하고 거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어떤 일보다도 생명의 밥상을 위한 노동은 거룩하다.

온 식구들이 한상에 모여 밥을 나누면 그것이

곧 생명을 나누는 거룩한 가족 공동체이며 식탁교제가 되는 것이다.


가족 공동체성의 추구와 타자에 한 배려와 섬김의 자리가 부엌이라는 식탁으로부터 시작된다.

부엌은 일상의 실천 속에 중요한 원리가 되어 자신과 함께 사람들을 풍요롭게 성장시킨다.

살림의 공동체성은 지속적인 관계와 끊임없는 교감 속에서 생명을 살리는 인류 문명의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여성의 ‘살림살이’가 올바르게 평가받지 못하고 부엌데기로 치부하던 시가 있었다.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종속된 열등한 존재로 부수적인 역할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가족으로부터 소외받으며 집안 구석진 곳으로 밀려나기도 했던 부엌의 이미지를 되살려야 한다.


오늘날 현대에 이르러 실제로 부엌의 의미가 얼마나 많이 확장되었는지 모른다.

다목적 생활공간이자 과학과 예술, 문화,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집약된 현대적 이미지는 부엌 이상의 의미를 넘어선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시금 가족 소통의 공간과 가족생활의 중심 공간으로

지위를 되찾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모른다.

나도 이러한 소중함을 알고 철이 든 연후에 고식적이고 유교적인 사상에서 탈피하여 부엌에 늘 상 참여한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한 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몰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짐승의 썩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리기도 한다.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보다 한없이 마음의 곡간(穀間)과 곳간(庫 間)에 축적하고 탐욕하며 산다.


한 인간으로서, 또한 목회자로서의 모든 학문과 배움(앎), 신학함의 사유가 여기에 머묾도 너무 소중하다.

우리의 신학과 학문은 살아있는 삶과 연결되어야 하며 그리스도 경외의 신앙은 일상의 삶을 성화시킴으로써

고양되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의 모든 배움은 고통 받고 있는 생명체인 소외 받고 가난한 자,

그리고 자연에 이르기까지 포괄하며 신학과 결합된 구원의 소망을 구한다.

또한 우리는 가족 공동체에서부터 확장하여 인류 공동체에 한 관심이 곧 생명신학에 한 실천적 역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통전의 신학을 목사라는 어떤 특정한 사람이 아닌 한 인간으로, 한 민중으로,

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가!

밥을 먹는 일, 똥을 눕는 일, 부엌에서 밥을 짓는 일,

각자의 일터에서 배역을 맡아 살아가는 일, 살아내는 신앙이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