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낮은 곳에서 부르는 생명의 노래'

내 얼굴과 표정을 가꾸는 것은 참된 신앙의 몫

새벽지기1 2020. 1. 25. 07:26


내 얼굴과 표정을 가꾸는 것은
참된 신앙의 몫


흑인과 한국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치면 누가 더 놀라고 섬뜩해 할까?

대답은 오히려 흑인 쪽이다.

왜냐하면

첫째, 흑인들이 생각할 때,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에 관한 한 세계적인 국민적 유단자들로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 무엇보다 더 무서운 것은 한국인들의 생김새와 표정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은 얼굴에 별 표정이 없는 표적인 민족으로 꼽힌다.

찢어진 눈, 치켜 올려 뜬 눈, 뭔가 늘 화난 듯한 얼굴, 정말 누가 더 무섭겠는가?


어느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길을 물으려했지만 모두가 화난 얼굴 같아서
결국 길을 묻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가 본국에 돌아가서 칼럼을 쓰게 되었는데 미국인들은 언제나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민족이지만
한국인은 언제나 화를 낼 준비가 되어있는 민족이라고 꼬집었다고 한다.

국인들에게 우리나라 사람의 첫인상을 물으면 표정이 똑같아서 모두 비슷해 보인다고 말한다.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으면서 ‘아 여기가 한국이구나’ 하고 깨닫게 만드는 것은

심사위원들의 굳은 표정과 공항을 나서면서부터 즐비하게 서있는 택시나 차를 몰고 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모습에서부터라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자기 나라에 여행 온 한국인들을 ‘악어’라고 부를 정도라고 한다.

얼굴에 표정이 없다는 것에 한 비하적인 표현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웃지 않는 무표정한 동물이 악어라고 하지 않던가?

프랑스의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네 얼굴은 너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고 따뜻한 기분이 들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우리가 자신의 얼굴을 보는 시간은 그야말로 거울을 볼 때뿐이다.

나머지의 시간은 우리 얼굴이라기보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내 얼굴을 가꾸고, 나의 표정을 관리하는 일은 주위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국제 매너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매너의 처음으로 밝은 얼굴 표정을 꼽는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처음 마음도 밝은 얼굴 표정이다.

나의 얼굴을 두고 남의 얼굴이라고 말하기가 우습지만 사실은 그런 셈이다.


나는 얼굴이 늘 심각하거나 인상을 벅벅 쓰는 사람 중에 신앙이 좋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화를 잘 내고, 불평 잘하고, 험악한 인상을 품은 사람을 어찌 원만하고 성숙된 신앙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물론 태생적으로 잘 웃고 낙천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다.

법이 없어도 살 것 같은 맘씨 좋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태생적 낙관주의(낙천주의)와는 분명히 다른 진짜 속마음이 따뜻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단 마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차고 넘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는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기에 그러하다.


여기서 ‘기뻐하라는 명령은 기도하라는 명령보다 우선한다.
스펄젼 목사는 그의 설교에서 “천국의 기쁨에 하여 알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표정관리에 주의 하십시오. 우선 여러분의 기억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어깨를 펴시고 활짝 웃으면서

‘천국의 기쁨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라고 소리쳐 보십시오. 그런데 여러분이 지
옥의 어두움과 불안을 알기 원하신다면 특별한 표정을 연출할 필요가 없습
니다. 여러분의 있는 모습 그로가 바로 지옥의 표정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표정관리는 본래적인 습관을 넘어서는 신앙적인 마음의 표출이요

감사의 마음으로 체질화된 인격적 성숙에서 분출되고 반사되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할 수 있다.
평판은 그 사람에게 한 최초의 소개장이라면 표정은 그 사람에게 한 최악의 고자와도 같다.

남을 위하여 내 얼굴을 가꾸고 표정을 관리하며

격적 관계를 중요시하는 마음이야말로 참된 신앙인의 자세임에 틀림이 없다.

사람의 얼굴만큼  변화무쌍한 것이 없다.

사람의 얼굴은 80개의 근육으로 되어있는데

그 80개의 근육으로 7,000가지 이상의 표정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몸의 근육들 가운데 가장 많이 몰려있고 가장 오묘한 것이 바로 얼굴이다.

그래서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며, 한 권의 책이다.

얼굴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문호 발자크의 한 마디다.

한 사람의 얼굴이 그 사람의 살아온 내력이나 가치관과 태도를 그로 들어내 준다는 건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첫인상이 결정되는 데는 약 6초가 걸린다고 한다.

첫인상이 결정되는 요소는 외모, 표정, 제스처가 80%, 목소리 톤, 말하는 방법 13%,

그리고 나머지 7%가 인격이라고 한다.

얼굴 표정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듯 표정과 감정의 관계 또한 불가분의 관계다.

생긴 대로 사는지, 사는 대로 생기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간됨과 얼굴 표정 사이에 상관관계가 높다는 것은 확실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인상’이라고 한다.


1년에 3백 명 이상의 도둑을 잡는 어느 유능한 수사관은

“도둑은 백이면 백 모두 도둑놈처럼 생겼다.”고 말한다.

사람의 “인상”이란 이런 것이다.

상이 안 좋은 사람의 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 “상판기”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일상의 생활과 습성이 몸에 젖어서 자신만의 특유한 냄새와 인상을 풍기게 된다.
“40세가 지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

자신의 인상 때문에 턱수염을 기르게 되었다던 링컨 통령이 남긴 말이다.

생명과 기쁨이 흘러넘치는 얼굴, 감사와 희망이 넘치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인격의 내면을 잘 가꾸어야 되겠다.

감사체질, 감사습관, 감사인격이 될 때에 이 모든 구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으며 기도해야겠다.


신앙의 몫이 차지하는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있음을 믿는다.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아름다운 자존감이다.

얼굴은 그분이 주셨지만, 표정은 내가 드릴 선물이다.

눈은 그분이 주셨지만, 성격적 세계관으로 보는 건 내가 드릴 선물이다.

입은 그분이 주셨지만, 좋은 말을 하는 건 내가 드릴 선물이다.

성경은 그분이 주셨지만, 나의 인격으로 내면화 시키는 건 내가 드릴 선물이다.
귀는 그분이 주셨지만, 귀 기울여 주의 뜻을 순종하며 경청하는 것은 내가 드릴 선물이다.

손은 그분이 주셨지만, 땀 흘려 수고하고 이웃에게 손 내어 주는 것은 내가 드릴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