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어와
목적어가 되시는 주님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물음의 존재이고, 물음을 통해 성장한다.
어린 아이의 생기발랄함은 물음에 있다.
묻고 또 묻기에 아이의 혼은 맑다.
보이는 것마다 쉬지 않고 묻기에 마음과 혼이 자란다.
물음이 아이의 성장 양소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 또한 깊고 오묘하고 신비롭기 그지없다.
쉬지 않고 묻고 찾고 관찰하고 파헤쳐도 그 속살을 들여다보기 힘들만큼
세상과 삶은 한없이 복잡하고 현묘하다.
세상과 삶은 정말 호기심 천국이다.
그런 세상을 어찌 묻지 않고 살 수 있으랴?
생각하고 묻고 두드리면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인생의 알짬이다.
신앙도 물음을 통하여 믿음을 확장하는 삶이다.
삶의 무게를 지탱하고 정직하게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과 시의 온갖 아픔을 끌어 앉고 하나님께 물으며 상처를 받는 자들이다.
모든 인생에는 따옴표가 필요하다.
인생의 조교들로부터의 따옴표를 빌어다가 인생을 배움이다.
인생보다 더 큰 인생의 스승은 없다.
인생은 끝없는 배움의 과정이어야 한다.
반대로 나의 인생도 누군가에게 따옴표가 되어야 한다.
내 인생의 한 토막이라도 누군가에게 가르침이 되어야 하고,
누군가를 자라게 하는 삶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우리 인생의 대부분은 수많은 물음표와 느낌표와 따옴표 속에서 삶의 진지함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우리 인생에 최고의 따옴표가 된다.
느낌표는 글에 살아있는 감정을 불어넣는 숨이다.
글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끌어내리는 견인이다.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복잡 미묘함을 느낌표 하나가 말없이 전한다.
느낌표에는 수많은 말과 생각과 감정이 녹아 있다.
진실로 삶은 선물이다.
모든 것이 온통 선물이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어찌 행복을 노래하지 않을 수 있으랴.
눈을 뜨고 귀를 열면 언제고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에 휘감기게 되는데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리는 주님의 임재 앞에 서로에 한 느낌표를 가지고
피차에게 인생의 쉼표가 되어주고 의미가 되어주기 위해 은총의 만남들을 가꾸어간다.
인생의 느낌표는 물음표의 아들이다.
묻는 자만이 해답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고,
물음이 깊을수록 감동도 깊은 법이다.
물음표와 느낌표는 인생의 짝꿍이다.
성찰이 물음표라면 음미는 느낌표다.
생활은 성찰을 할 때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고,
삶은 음미를 할 때 메마르지 않을 수 있다.
삶이란 본시 느낌이요 음미이다.
섬세한 느낌이 삶을 살아나게 하고, 그윽한 음미가 삶을 풍성케 한다.
주님은 우리 삶의 마침표요 영원한 쉼표가 되신다.
인생을 살면서 적당한 멈춤이 필요하다.
쉼표는 삶의 여백이다.
생활을 멈추어야 성찰과 묵상을 할 수 있고,
삶을 섬세하게 음미할 수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깊이 응시할 수 있다.
쉼을 통한 성찰과 묵상이 없는 세상살이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다.
하나님께서도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멈추셨다.
멈추어야만 창조한 세계를 깊이 응시하시며 음미할 수 있고,
멈춤을 통해서만 창조와 종말의 완성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안식의 나라이다.
잘 사는 것, 잘 늙어 가는 것, 잘 죽는 일이 여기에 있다.
주님의 원한 안식의 나라에 기대어 사는 삶이다.
내 삶의 의무를 다 끝내고 어느 날 하나님이 부르시는 마지막 그날까지
겸허한 마침표 하나 네모난 상자에 들어가기까지 하늘의 심부름 잘하는 것이리라.
그 인생의 마침표 내가 찍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마침표를 찍어 줄 때까지
묵묵히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 생애 끝나는 날 길동무로 걷다가
어느 날 신이 부르시면 기쁨으로 함께 마침표 찍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거친 인생길 사노라면
인생 조교들로부터 따옴표를 빌어다가 삶의 수필도 써야 하고,
삶이라는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노라면 감탄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음표도 생기고 명령어도 딸리고 말없음표도 생기고
이것저것 삶의 군더더기가 이끼처럼 피어오른다.
때론 버겁고 부대끼고 논리와 이치가 뒤바뀌고
문장이 뒤 바뀌는 세상에 좌절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내 살아 온 햇수만큼의 묵은 죄인이라는 사실과
내 심령이 무겁고 때론 곤고하고 누더기 같이 느껴질 때라도
더욱 비참해하지 않음은 회개하고 용서받을 죄에
한 자아의 참회록을 쓸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용서받은 죄인들인 우리는 내게 의가 없음을 알아 하늘 법정에서 내리는
은총과 심판의 소리 들을 줄 아는 진리의 아들이요 영광의 자녀가 되는 까닭이다.
이 모든 깨달음의 연후에도 주님은 여전히 내 삶의 주어와 목적어가 되신다.
내 삶의 모든 동사는 그분을 목적어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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