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낮은 곳에서 부르는 생명의 노래'

하나님 성품 닮아가기

새벽지기1 2020. 1. 24. 03:08


하나님 성품 닮아가기


신앙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넣어주신 신적 성품을 회복하는 것이리라.

좋은 성품이란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다는 것에 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와 그 아들은 성품의 화신이다.

두 분의 존재가 성품의 정의이다.


성품의 척도로써 관계의 건강성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다.

건강하고 오래된 관계는 온전한 성품이 존재하는 증거이다.

갈등 많고 단명한 관계는 성품 결손의 증거이다.

훌륭한 성품의 사람은 요동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을 안다는 것은 그 분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그분을 신뢰한다는 것은 그분이 나의 요동함을 허락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모든 대인 관계는 관련자들의 성품에 직접 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성품 결손이 있을 때 제일 먼저 관계가 고통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기준을 받아들이면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초점을 두게 된다.
하나님의 성품은 타인 지향적이다.

그분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롬8:32)라는 것을 잊지 말라.

품을 추구한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을 진정 배려한다는 뜻이다.

내게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그들을 섬겨야 한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는 책임을 다하며

그것이 우리의 관계에 윤활유 효과를 낸다.


시몬 베드로는 다혈질의 표적인 사람으로 인식한다.

혈기가 많고, 나서기를 좋아하며, 뒷감당을 못하는 좌충우돌하는 사람이다.

래서 그의 삶은 다혈질의 장점과 단점이 한꺼번에 표출된 가장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베드로는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 하나이다!”(눅22:33)라고 다짐했지만,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오순절 후엔 딴사람이 되었고

한 번 설교에 3천명, 5천명이 회개하는 열매를 맺는다.

그는 성령의 담대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9-20)고 했다.
그는 더 많은 세월 속에 더 많이 완숙해졌다.

그런 그는 급기야 하나님의 성품에 해서 묵상할 만큼 온유한 인격이 되었다.

그는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듯이 하나님께 광을 돌리라 했다(벧전4:11).

그는 또 벧후1:4절에서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증언한다.

그는 주님을 향해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던 그날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뒤 노장이 되어

베드로전서 4:7-8절을 통하여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그러나 성품은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감정은 우리의 마음의 한 요소이지만 성품은 전인격적인 것이다.

성품은 의지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일관된 성품은 연약한 인간의 의지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태도로부터 나온다.

성품은 성격이 아니다.

격은 각 사람마다 다른 행동유형을 만들어내는 심리적 특징이다.

곧 성격은 가치중립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성품은 행동이 아니다.

행동은 독립된 사건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행동에는 일관된 요소가 있고,

그 일관된 요소는 그 사람의 내적 일관성에 있다.

그러므로 성품은 행동을 만들어내는 행동 이전의 인격에 해당한다.

성품은 타고난 성격과 달리 가치 지향적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좋고 나쁜지를 알고

자기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이다.
성품은 상황을 위한 처세술이 아니라 인격적 본질을 말한다.

처세술은 그렇게 할 때 자기 자신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고,

성품은 원래 그것이 옳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목과 상관없이 언제나 같은 태도를 견지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성경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독교적 가치를

관되게 추구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갖게 하는 인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좋은 성품은 그냥 착하고 좋은 사람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알고 추구해나갈 줄 아는 사람이다.

또한 하나님나라의 의(옳을 것)를 알고 추구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과 악에 항하여 싸울 수 있는 사람이다.

나의 노력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가는 것이다.

아기가 점점 자라서 어른이 되듯 성숙하고 자라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순간에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숙의 힘, 생명력은 우리 내부에서 나오지 않는다.

바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개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섬김이다.

예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라.

사랑, 용서, 온유, 오래 참음, 의를 추구 등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과 타인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싸우는 그리스도인은 없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함께하는 것이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혼자 강한 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섬기고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나라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사람인 것이다.

결혼 상대자를 구하는 젊은이들에게도 믿음 보지 말고 성품을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믿음은 한 순간에 간단히 검증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언행심사 됨됨이를 떠나서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삶의 실체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