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삶의 진정한 앎(Know)

새벽지기1 2017. 11. 18. 07:34

샬롬! 찬미예수


21세기에 더 필요한 것은 노하우(know-how) 보다는 노웨어(know-where).

산업 사회에서는 자기만의 독특한 기술, '노하우(know how)'가 성공의 요인이었다면,

정보 사회에서는 '노웨어(know where)'없이는 성공을 거두기 어렵게 되었다.

21세기를 적응해 나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정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정보의 단서를 자신이 모두 수집하거나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know where가 신분계급사회에서 최 상위 계급이 모든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사회를 장악하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통치 행위로 이어지곤 했다.

이것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한글을 언문이라 하여 반대한 것이나,

세속의 권력위에 교회가 군림하던 중세유럽에서 성직자 이외의 사람이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유폐시키고

성직자들만의 독점으로 기득권을 강화시키는 생존방식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이처럼 지금과 같은 '노웨어시대'를 여는 데는 신분제도에 맞서 싸운 피지배계급들의 끝없는 노력과 엄청난 희생이 있었다.

 

20세기의 자본과 노동이 결합된 시대에는 '개미와 베짱이'라는 우화가 칭송을 받았다면

21세기에서는 지식과 정보가 노동력을 능가하는 자산이 되는 사회가 되었다. 

노동력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빌릴 수 없는 것으로 사람의 노동의 결과는 오로지 그 사람의 것일 뿐이다.

하지만 지식과 정보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빌릴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21세기를 상징하는 곤충은 '거미'이다.

대부분의 거미는 곤충이 많이 오가는 길목에 거미줄을 쳐놓고 곤충이 걸리기를 기다린다  

많은 곤충을 잡기 위해서는 좋은 길목에 거미줄을 쳐놓아야 한다.

지식정보사회를 대표하는 인터넷의 www'전 세계에 쳐놓은 거미줄(world-wide web)'을 의미한다.


21세기는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강자이다.

혼자 노력해서 얻는 지식이나 정보는 여러 사람의 것을 합쳐놓은 것보다 클 수 없다.

고로 지금은 유용한 정보가 활발하게 유통되는 길목에 인적 네트워크를 잘 형성하는 사람이 강자인 셈이다.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유용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많이 사귀는 사람이 강자이다.

지식과 정보는 얼마든지 주고받을 수 있고, 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은 마음이 건강함을 재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된다.

마음이 건강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현대인들의 비극은 know-how와 Know-where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과 영생을 보증하는 진리의 말씀이며, 

그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얻을 자는 믿는 자의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임에도 

생명(영생)을 얻는 것과는 무관하게 성경을 하나의 정보(know where)나 삶의 방법(know how) 정도로 취급한다. 

왜 성경을 믿어야 하는지, 왜 읽어야 하는지 보다 지식과 정보적 차원에서 성경을 취급하는 자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현대는 인공지능을 통한 엄청난 지식과 지능을 활용하여 인간의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다.

야심찬 인간의 과학적, 의학적 진화는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고,

달나라, 화성까지 인공위성을 날려 보내는 방법까지 알고 있고,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게놈 프로젝트에 의해 판독되어 불치병을 고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 모두 know-how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왜 사는지, 왜 그 일을 하는지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삶의 목적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래 살게 되었으나, 원망과 불평과 불행과 고통과 갈등이 비례하여 더 커질 뿐이다.

궁극적인 존재 이유를 아는 것,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main event라 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내가 누구(know who)인지를 알고, 하나님을 아는 것,

내게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know when)이고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인지를 아는 것,

내가 어디로 가는(know where) 존재이며, 하나님 나라와 우리의 본향은 어디에 존재하는지,

내가 무엇(know what)을 먼저 알고, 무엇을 얻기 위해 사는지,

(know why) 살아야 하는지를 총체적으로 깨닫는(know) 것이야말로 지혜롭게 사는 것이 아닐까?


무작정 빨리 달려야하는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따금씩 우리의 영혼도 같이 오는지 뒤도 돌아보면서

방향(푯대)이 어디인지를 보고 달려야 할 것이다.   


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