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아듀 가을이여!

새벽지기1 2017. 11. 3. 14:15

 

샬롬! 찬미예수

가을에는 역시 시를 쓰고 읽고 나누는 것이 제격이다.

가을을 노래하지 않고 마음의 된서리를 맞기에는 아직 너무도 애닳다.

가을은 영혼, 고독, 여행, 노래, 떠남을 애달파하는 계절이다.

이번 주와 다음 주에도 차옥혜 시인(1945년, 전주)을 소개하면서 떠나가는 가을을 아듀하고 싶다.

20여 년 전 시인은 콘크리트 벽 속에 갇혀 사는 것보다 흙냄새를 맡으며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풀과 냇물과 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인간이 대등한 관계로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났다.

그 곳에서 유기농법으로 나무와 화초와 야채를 기르느라 육체가 삭아 들어가는 각고의 세월을 보내는 중에

삽자루와 호미를 던져버리고 그 곳을 떠나고 싶은 갈등을 수없이 겪은듯하다.

그러나 시인 자신이 뿌리고 심은 식물들이 푸릇푸릇 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을 보며

감격과 환희를 느끼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버렸다.

처음엔 식물의 주인 행세를 하였으나 차츰 그들의 어머니 형제 또는 자식이 되는 것을 느끼며

식물의 마음을 지니게 되면서 식물자체가 되어버렸다고 시인은 서문에 쓰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시인은 문득 식물은 신이 인간에게 읽히고 싶어 흙에 쓴 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밭과 정원은 시인이 식물글자로 세상을 향해 생명과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시를 쓴 황토밭 원고지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

황토밭 원고지에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

온 몸으로 껴안고 사랑하며

땀 흘려야 쓸 수 있지만

쓰고 난 후에도 보살피지 않으면

제멋대로거나 사라지지만

날마다 새로운 파노라마 초록 시이다

언제나 설레고 아름답고 편안한

숨 쉬는 생명 시이다

옷은 황톳물과 풀물로 얼룩지고

호미 들고 동동거려 팔다리가 쑤셔

볼품없이 늙고 여위어도

식물 글자로 시를 쓰는 것이 즐겁다

시인은 밭과 들에서 식물을 재배하면서 자연스레 시를 쓰게 되고 들녘에서 들려오는 평화의 소리를 듣는다.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평안을 느끼며 우주를 안은 듯한 희열에 잠긴다.

가을걷이 끝난 들판을 바라본 시인은 봄부터 여름을 거쳐 가을에 추수하는 식물들을

임신한 여인이 10 달 만에 귀한 아이를 얻는 산모에 비유하고 있다.

당당한 승리자가 되어 영생과 안식의 집으로 돌아가는 어머니에 비유하고 있다.


마른 껍질들의 합창

 

가을걷이 끝난 들녘에 서면

마른 껍질들의 합창 소리 들린다.

~중략~

새 생명을 낳은 산모들이

영원으로 대지로 우주로 귀향하며

기쁨에 넘쳐 부르는 노래, 노래

마음과 영혼으로 듣는

소리 없는 합창

한여름 힘겨운 임신과

몸서리치는 산고는 옛 이야기

가벼워진 몸으로 당당한 승리자의 눈빛으로

영생과 안식의 집으로 돌아가는

세상과 세상을 이어준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들의 소리 없는 노래

가을 벌판에 서면

마른 껍질들의 합창 소리 듣는다.

시인은 또한 식물에서 인생을 읽어내고 있는 것을 본다.

삶의 고뇌와 번뇌를 겪어내지 않고는 인생을 이해할 수 없고, 삶의 강물을 건널 수 없는 것이다.

맨몸으로 눈보라를 견디고 가물에 목말라본 나무는 모든 시련을 이겨낸 사람, 또는 시인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아픈 가슴을 훑어내며,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서러움을 토해내는 시인만이

아름다운 훈장을 받을 것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이테

 

일 년에 200일 이상 비가 와

일 년 내내

몸이 자라고 나뭇잎이 노래하는

적도 부근에 사는 나무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는

백팔번뇌를 겪은 나무에게

맨몸으로 눈보라를 견디고

가물에 목말라본 나무에게

밤하늘의 별이 얼마나 아픈 것인가를

아는 나무에게

하늘이 주는 훈장이다

내 몸에서

나이테를 찾아보는 가을 날

자꾸만 눈이 시리다


이 가을 나도 신의 존재를 언급하고 않아도 나의 삶의 여백에

시와 철학과 문학과 노래와 신학이 뛰노는 축제의 장으로 삼고 싶다.

여전히 자연은 시의 강단이요, 무언의 사도가 설교하는 듯한 장엄한 곳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영광의 무대이기에.....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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