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시가 고픈 가을이여 아듀!

새벽지기1 2017. 11. 10. 23:49

샬롬! 찬미예수


오늘도 치옥혜 시인의 마음을 따라잡으려 세 편의 시를 올려 본다.


좋은 시는, 세계와 우주를 향해 마음의 창을 항상 열어두고 사랑으로 만물을 껴안고 호흡하며,

열정을 가지고 온 몸으로 수도자처럼 정진할 때만 나에게 얼굴을 잠시 보여준다고 한다.


햇빛의 몸을 보았다

 

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내 책상에 펼쳐놓은 노트에서 옷을 벗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 보라

일곱 가지 색깔이 나란히 사이좋게 반짝이는

색동 몸이다.


햇빛의 아름다운 몸을 가만히 어루만지니

어느덧 햇빛이 부피도 무게도 없이

내 손등 위에 있다.


세상에 가득하면서도

제 자리나 집이 없다.


올 사람들의 영혼이 그러할까

떠난 사람들의 넋이 그러할까

무엇에게도 구속되지 않고

모든 것과 함께 하면서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하는

햇빛을 닮으면

내 몸도 무지개가 될까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이 될까

내 노트 위에서 쉬고 있는 햇빛의 맨 몸이

손가락 하나 안 대고

나를 사로잡는다.

 

 

산 숲

 

산 숲은

세상의 허파

사람과 동물들이 더럽힌 공기를

맑게 청소하여 되돌려 주는

공기청정기

 

산 숲은

성자

장대비를 머금어 홍수를 막아주고

가뭄에 저장한 물을 흘려보내

목마른 마을과 들을 적셔주는

사랑 나눔이

 

산 숲은

어머니

찾아온 생명이면

누구든 무엇이든 품어주는

안식처 



우리 어머니는 시인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야

어머니가 시인인 것을 알았네.

문자로 남긴 시는 한 줄도 없지만

벌판에 산에 강에 바다에

길에 집에 마을에 도시에

내 마음 멎는 곳마다

어머니가 몸으로 쓴 시 박혀있네.

나만 볼 수 있는 시

내가 번역해야만 다른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어머니의 시를 읽네.

 

향기롭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시

눈물 나고 가슴 아픈 어머니의 시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어머니의 시

읽어도 읽어도 더 읽고 싶은 시

읽다 보면 가슴에 고이는 사랑

읽다 보면 눈에 맺히는 눈물

읽다 보면 온 몸에 퍼지는 평화

 

나는 글씨로 시를 쓰느라

사랑을 잃고 삶을 허물었는데

어머니는 몸으로 시를 쓰며

사랑을 이루고 삶을 세우셨네.

 

시인인 나를 부끄럽게 하는 어머니의 시

내 생애 가장 감동스런 어머니의 시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어머니의 시

천지 사방에 박혀 있는 어머니의 시

 

우리 어머니는

세상에 몸으로 시를 쓴 시인이네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분을 진심으로 만나고 싶어지는 가을의 뒤안길이다.


신 목사

 

'좋은 말씀 > 신권인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엽과 눈 그리고 물  (0) 2017.11.24
삶의 진정한 앎(Know)  (0) 2017.11.18
아듀 가을이여!  (0) 2017.11.03
변(便)에 대한 변(辨)  (0) 2017.10.28
전인적 총체적인 삶  (0) 2017.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