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순절묵상

사순절 묵상(14)

새벽지기1 2017. 3. 30. 08:37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19:14)


19편은 크게 두 단락으로 구분된다. 첫 단락은 1-6절이다.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이 구절에 맞닿아 있다. 1절을 보라.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하늘과 궁창은 사람이 손을 댈 수 없는 영역이다. 절대의 세계이자 초월의 세계이다. 절대 생명이 은폐되어 있는 세계다. 이 세상의 생명은 거기로부터 온다. 시인은 해를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다고 묘사했다. 고대인들에게 하늘, , , , 그리고 폭우, 번개 등이 얼마나 위력적이었을지는 상상이 간다. 그 모든 자연의 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게 시인의 고백이다.

 

둘째 단락은 7-14절이다. 율법의 완전성에 대한 찬가다. 첫 단락이 자연의 위대성을 노래하는 것과 비견된다. 율법은 영혼을 살리며 어리석은 사람들을 지혜롭게 한다(7).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한다(8). 여호와의 법은 진실하고 의로워서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10). 율법을 여러 가지 다른 단어로 표현했다. 여호와의 증거, 여호와의 교훈, 여호와의 계명,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여호와의 법 등등이다. 율법은 유대인들이 자랑할 만하다. 참고적으로 한 마디 짚고 넘어가자. 기독교는 율법이 아니라 복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율법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이자 그림자라고 했다(8:5). 바울도 율법 실천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율법을 해체하지 않는다. 율법은 복음 안에서 분명한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앞에서 창조 세계와 율법 세계의 완전성을 노래한 다음에 결론적으로 마지막 14절에 이렇게 기원한다.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하나이다.” 장엄하고 웅장한 자연도 그것 자체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의미가 있듯이, 율법도 그것 자체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의미가 있다. 시인의 관심은 하나님이다. 그래서 자신의 말과 생각이 하나님께 바쳐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을 반석과 구속자라고 표현했다. 반석과 구속자는 똑같은 뜻이다. 구속을 받아야만 삶이 반석에 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늘의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지구와 그 안의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야말로, 그리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야말로 반석이다. 그분만이 우리 생명의 토대다. 이런 말을 상투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것을 반석으로 삼으려고 한다. 이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그 모든 것들은 자연보다 훨씬 힘이 떨어진다. 대통령도 죽고, 대기업 회장도 죽는다. 권력과 돈이 우리 삶의 토대가 될 수 없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야말로 반석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반석이라는 말도 실제로는 예수로 인해서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사건인 부활이야말로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예수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의 고난과 십자가가 우리 삶에 깊이 각인되는 사순절이 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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