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순절묵상

사순절 묵상(13)

새벽지기1 2017. 3. 29. 08:2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12:42,43)

 

예수 당시에 사람들은 왜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을까? 요한복음 기자는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12:37)라고 그 사실을 짚었다. 예수는 숨어 다니지 않았다. 공생애 중에 메시아에게 나타날 표적을 많이 행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요한복음 기자는 이사야의 말을(6:10) 인용해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하나님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완고하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2:40). 하나님이 눈을 멀게 했다면 결국 책임이 그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 아니냐,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게 아니다. 믿지 못하는 것이 다른 방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사태라는 사실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출애굽 역사에서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는 진술과 비슷한 이야기다.

 

요한복음 기자는 이런 사태의 다른 한 측면을 본다. 그것은 예수를 믿지만 바리새인들을 의식해서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바리새인들에게 밉보이면 출교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물론 바리새인들에게는 출교 시킬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그런 일은 당시 유대교의 최고 권력 기관인 산헤드린의 몫이다. 아마도 산헤드린 의원 중에 바리새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직접 교권을 행사한다기보다는 그들의 고발로 출교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는 의미로 봐야한다.

 

출교는 고대 유대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거나 다를 게 없다. 유대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종교는 이와 비슷한 제도를 둔다. 마틴 루터는 당시 가톨릭교회의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받았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종교재판을 받아 파문을 당하거나 심할 경우에는 사형까지 당했다. 사형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단 파문을 당하면 아무도 그를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서 살해당하기 일쑤였다. 예수 당시의 출교는 중세기 때의 상황보다 더 심각했다. 그러니 예수에 대해서 호감을 느끼던 사람들이라 해도 드러내놓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요한복음 기자는 출교 당할까 두려워하던 사람들을 단순히 예수 당시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인들 전반을 가리키는지 모른다.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90년 어간부터 유대교는 기독교인들을 회당공동체에서 축출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 어느 정도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그런대로 어울려 지낼 수 있었다. 유대교가 기독교와 분명한 선을 긋기 시작한 역사적 사건은 70년에 끝난 유대전쟁이다. 유대 독립을 위한 전쟁은 실패로 끝났다.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서 함락되었다. 성전은 초토화되었다. 제사장 계급도 없어지고, 왕족도 사라졌다.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는 바리새파 운동이었다. 율법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율법을 철저하게 따르기를 거부하는 기독교를 용납할 수 없었다. 유대교의 보호 우산 아래 머물려면 율법을 지키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라는 압박이 가해졌다. 초기 기독교인들 중에서 이런 상황을 크게 두려워하던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출교 당할까 두려워하던 사람들을 가리켜 요한복음 기자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했다.’고 표현했다.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의 영광은 확실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영광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돈이 많거나 사회적 신분이 높으면 영광을 받는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일까?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의식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고 그것을 기리고 순종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했고, 앞으로 완성하실 것이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신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하신 이런 일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당연히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 등에 매이지 않는다. 세상에서 영광스럽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쉽지 않겠지만.

 

사순절은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는 절기다. 세상의 화려한 것과 비교해서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겉으로는 초라하게 보이지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 행위였으며,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게 가능할까? 이게 종교적인 자기 합리화로서가 아니라 삶의 확실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물론이다. 세상의 영광으로는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더 가까이 가는 사순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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