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순절묵상

사순절 묵상(10)

새벽지기1 2017. 3. 23. 08:3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22:23)

 

시편 22편은 고난과 고통의 바닥에 팽개쳐진 사람의 외침이다. 예수도 십자가 위에서 시 22:1절을 그대로 인용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 몇 구절을 더 인용해보겠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2).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6).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11).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14,15).

 

나는 지난 인생살이에서 신음소리를 낼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지 못해서 시편 기자의 심정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는 하더라도 실감하지 못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토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시편을 설교해야 할 목사로서 결격사유에 해당된다. 어쩔 수 없다.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간접으로라도 경험해야 한다. 책읽기가 가장 좋은 경험이다.

 

이렇게 참척에 가까운 고통을 외치던 시편기자가 22절부터 갑자기 평화로운 마음으로 노래한다. 시편 22편이 원래 두 편의 노래였다가 편집 과정에서 하나로 묶인 것인지, 아니면 시인이 고통을 극복하고 하나님 안에서 평화를 얻었다는 것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고통의 외침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게 우리 독자들에게 천만다행이다. 오늘 집중 묵상 구절을 살펴보자.

 

23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적 태도를 세 가지 단어로 반복해서 강조한다. 찬송하라, 영광을 돌려라, 그를 경외하라. 각각의 뜻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 찬송, 영광, 경외는 하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하나님을 주님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을 종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종은 주인에게 두 가지 태도를 갖춰야 한다. 하나는 절대 순종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 신뢰.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이것 외에 없다. 니체 같은 이들은 이런 태도를 노예근성이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근대주의는 인간의 주체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가르쳤다. 순종과 신뢰가 왜곡되면 병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런 심리 현상들이 기독교 신앙에서도 자주 나타났다. 자학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순종과 신뢰는 우리의 삶을 최고조로 고양시키는 태도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 순종과 절대 신뢰는 생명의 절정에 이르는 최선의 길이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 순종과 절대 신뢰를 잃지 않았다.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절대 순종과 절대 신뢰로 인해서 결국 인류 구원의 길이 열린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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