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순절묵상

사순절 묵상(7)

새벽지기1 2017. 3. 18. 07:4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4:11)


예수는 자신이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확신했을까? 대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복음서에는 그걸 긍정하는 듯한 보도도 나오지만 부정하는 듯한 보도도 나오기 때문이다. 제자들을 비롯해서 예수를 추종하던 이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언제 알게 되었을까? 그것도 분명하지가 않다. 복음서에는 예수의 공생에 중에 제자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보도도 나오지만 부활 이전까지 전혀 알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보도도 나온다.

 

마태복음 기자는 4:1-11절에서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세 가지 시험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메시아성에 대한 예수의 생각이 어떠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우리에게 암시해주고 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짚겠다. 마귀는 예수에게 와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즉 메시아라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능력을 보이라고 말했다. 1) 돌을 떡으로 만들라. 2)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3) 세상의 권력을 얻으려면 나에게 절하라.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 상을 늘 이런 방식으로 생각했다. 메시아의 선구자로 올 엘리야는 초능력의 대표자다. 예수는 마귀의 요구를 다 거부했다. 전혀 다른 메시아의 길을 그가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세 가지 시험이 끝난 뒤에 예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마태의 코멘트가 인상적이다.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광야의 시험에 대한 병행구인 눅 4:1-13에는 이런 표현이 없다. 마태복음이 유대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기록된 복음서라서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천사를 언급했는지 모르겠다. 마귀는 무엇이고, 천사는 무엇인가?

 

마귀는 우리를 유혹에 빠지게 하는 존재론적 능력이다. 욥의 삶을 파괴하면서 시험한 사탄이 바로 그런 마귀다. 이게 우리에게서 그렇게 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마귀의 시험에 놓여 있다. 공연한 불안, 미움, 증오, 가학적 심리에 빠질 때가 있다. 어디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일도 많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집단적으로도 그렇다. 이런 건 아무리 옆에서 합리적으로 설명해줘도 해결이 잘 안 된다. 마귀의 능력으로부터 벗어나기가 힘든 이유는 그것이 그럴듯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접근한다는 데에 있다. 예수가 당한 세 가지 시험을 보라.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도 다 거기에 매달려 있다. 경제를 살리라고 아우성이다.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시험이다. 성전 꼭대기에 뛰어내리라는 요구나 마귀에 절하라는 요구도 같은 이야기다. 우리는 평생 마귀의 시험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천사는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론적 능력이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능력은 마귀나 천사나 비슷하다. 강력하고, 초능력적이다. 천사는 마귀와 달리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능력이다. 이런 점에서는 성령의 신화적 표현이 천사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경우는 접어놓고 일단 예수의 경우를 본다면 본인이 마귀의 시험을 극복했을 때 천사의 능력에 휩싸였다. 마귀의 시험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예수도 천사로부터 시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사순절은 마귀의 활동 시간이다. 예수를 십자가 처형으로 몰아가는 것은 마귀의 일이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데, 그게 어떻게 마귀의 일이냐,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좁은 영역에서 그것은 분명히 마귀의 일이다. 그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큰 영역에서는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일이다. 인류 구원을 위해서 일어나야만 했던 일이다. 이 두 차원을 구분하면서 예수 구원 사건과 세계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몇 말씀을 하셨다. 복음서 기자들의 보도를 총괄해보면 일곱 마디 말씀이었다. 소위 가상칠언이다. 그중에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가 있다. 십자가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유기를 가리킨다. 예수가 당한 마지막 시험이다. 그는 시험을 이겼다. 하나님을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마귀가 예수를 떠나고, 천사가 와서 시중드는 일이 마지막 순간에도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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