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윤선박사

죄짐 지시기 위해 오셔

새벽지기1 2016. 11. 1. 07:0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알 때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견실성을 알게 되며, 그리스도의 겸손을 알게 된다.

1. 예언 성취로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


아기 예수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은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이루신 예언 성취의 사건이다(눅2:1-7).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시리라는 예언은 예수 탄생 800년 전에 선지자 미가로 말미암아 선포되었다(미5:2). 사람은 몇 날 앞에 되어질 일도 내다보지 못한다. 아니 그 보다도 몇 초 후에 일어날 일도 모르는 때가 많다. 1755년에 리스본(Lisbon)이란 지방에 지진이 일어나 6만 명이 죽었는데 그런 참사가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또 1908년에는 이태리의 두 도시 멧시나(Messina)와 레기오(Reggio)에 지진이 일어나 약 20만 명이 죽었는데 그런 일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차 될 일을 800년 전에 그의 선지자 미가로 하여금 미리 예언하게 하셨다. 그는 800 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의 예언하신 말씀을 변치 않으시고 그대로 이루셨으니, 그가 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를 감동하셔서 유대 전국에 호적령(戶籍令)을 내리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경을 모르는 불신자를 통해서도 그의 말씀을 이루신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호적하기 위하여 움직였고, 요셉도 마리아와 함께 그의 고향인 베들레헴에까지 갔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섭리적으로 이루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그 사건에 대하여는 우리가 하나님 자신을 믿는 것과 같이 전적으로 믿어야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예언 성취로 오신 예수님을 믿되 생명을 걸고 믿어야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마련하신 참된 구원 방법대로 그리스도를 믿어야 된다.


2. 탄생하신 그리스도를 구유에 누이신 의미


아기 예수님을 구유에 누이신 이유는 호적하러 온 사람들이 많아 여관에 수용되실 방이 없었던 까닭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첫걸음부터 짐승의 구유에 누우신 것은 그가 하늘의 보좌를 내어 놓으시고 이 세상에 오시기까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극도로 낮아지신 것을 의미한다. 그는 평생 머리 두실 곳도 없이 지나셨으니 그에게는 자기 소유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고후8:9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낮아지신 것은 우리의 짐을 져 주시기 위함이었다.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차 바퀴들도 밑부분에 붙어 있고, 짐을 지는 사람들도 그 무거운 짐 아래서 헐떡거린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짐을 져 주신다. 시68:19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하였고, 마11:28-29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짐을 지시기 위하여 온 인류의 발 밑에 떨어지기까지 낮아지셨으되 온유하게 감당하심을 보여 준다.

우리의 짐은 죄짐이다. 주님은 이와 같이 우리의 죄짐을 져 주시기 위하여 낮은 자리로 떨어지셨는데 우리가 그를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를 불신임하는 가장 악한 죄악이다. 사랑을 받아 주지 않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슬픈 일은 없다. 그가 우리를 사랑하여 낮아지셨고 또 우리의 짐을 져 주시고자 하시는데 우리가 그를 만족히 믿어드리지 않는다면 이는 그의 사랑을 배척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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